글로벌 판매 비중 3% 미만으로 추락하며 결국 단종 수순. 일론 머스크의 시선이 자동차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테슬라의 상징과도 같았던 플래그십 전기차 모델 S와 모델 X가 한국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다. 테슬라코리아는 4월부터 두 모델의 신규 주문을 중단하고, 6월 말까지 기존 계약 물량의 인도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1억 원을 훌쩍 넘는 가격표를 달았던 이 프리미엄 전기차의 조용한 퇴장은 단순한 모델 단종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테슬라의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저조한 판매 실적, 생산 효율성 문제, 그리고 자동차를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으로 향하는 일론 머스크의 새로운 비전. 이 세 가지 키워드가 이번 결정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다. 그렇다면 테슬라는 왜 가장 상징적인 두 모델을 포기하는 과감한 선택을 한 것일까.
예고되었던 플래그십의 퇴장
모델 S와 모델 X의 단종은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테슬라가 전 세계에 인도한 차량 중 96.7%는 모델 3와 모델 Y였다. 반면 두 플래그십 모델의 판매 비중은 모두 합쳐도 3%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는 판매량 감소 폭이 전년 대비 30% 이상으로 더욱 커졌다.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수익성과 생산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 테슬라가 판매 비중이 낮은 두 모델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이는 시장의 흐름에 맞춰 대중적인 모델에 집중하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다.
자동차 공장이 로봇 공장으로
이번 단종 결정의 이면에는 더욱 거대한 계획이 숨어있다. 일론 머스크 CEO는 기존 모델 S와 X를 생산하던 미국 프리몬트 공장의 라인을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양산 설비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자동차 생산 라인을 로봇 생산 기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목표는 연간 100만 대의 로봇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테슬라가 더 이상 단순한 자동차 제조사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과 같다. AI와 로봇 기술을 중심으로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야심이 이번 플래그십 모델 단종을 통해 구체화된 것이다.
14년 역사의 종언과 남겨진 과제
2012년 출시된 모델 S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의 성능을 뛰어넘을 수 있음을 증명한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모델 X 역시 특유의 팔콘 윙 도어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테슬라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4년에 걸친 두 모델의 역사는 전기차 시장의 역사 그 자체였다.
이제 두 모델이 사라지면서 한국 내 테슬라 라인업은 모델 3, 모델 Y, 그리고 사이버트럭 3종으로 재편된다. 라인업은 간소화됐지만, 기존 오너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고가의 차량인 만큼 단종 이후 부품 수급이나 사후 관리(AS)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테슬라 측은 서비스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플래그십 모델의 단종이 기존 고객들의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테슬라의 거대한 전환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