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강자 그랜저 하이브리드, 세단의 가치를 증명할까
공간 활용성 앞세운 필랑트, 준대형 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
5월 가정의 달, 패밀리카 시장이 뜨겁다. 특히 비슷한 가격대의 두 국산 하이브리드 모델이 소비자들의 저울질을 유도하고 있다. 전통의 강자 현대 그랜저와 새로운 도전자 르노 필랑트가 그 주인공이다. 두 차량은 겹치는 가격표를 달고 나왔지만, 공간 활용성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어떤 선택이 더 현명할까.
르노 필랑트의 가격은 4,696만 원에서 5,218만 원,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4,354만 원에서 5,266만 원으로 대부분의 트림이 경쟁 구간에 속한다. 본격적인 출고가 시작되면서 두 모델의 직접 비교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지난 3월 판매량만 보면 그랜저 하이브리드는 4,345대, 필랑트는 4,920대를 기록하며 초반 기세는 필랑트가 앞서는 모양새다. 물론 이는 사전계약 물량이 반영된 수치일 가능성이 있어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
차체 크기만 보고 판단하면 섣부르다
단순한 제원표만 보면 두 차량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랜저는 전장 5,035mm, 휠베이스 2,895mm로 필랑트(전장 4,915mm, 휠베이스 2,820mm)보다 길다. 이는 세단 특유의 넉넉한 2열 레그룸으로 이어진다. 반면 필랑트는 전고가 1,635mm로 그랜저(1,460mm)보다 175mm나 높아 개방감과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공간 활용성의 차이는 트렁크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트렁크 용량은 480L이며 2열 폴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필랑트는 기본 633L에 2열을 접으면 최대 2,050L까지 확장된다. 가족과 함께 캠핑이나 레저 활동을 즐긴다면 필랑트의 압도적인 적재 공간은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마력이 전부가 아닌 하이브리드의 세계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접근 방식도 전혀 다르다. 필랑트는 시스템 총 출력 250마력으로 230마력의 그랜저를 수치상 앞선다. 그러나 실제 0-100km/h 가속 시간은 그랜저가 7.7초로 필랑트의 8.8초보다 1초 이상 빠르다. 이는 100kg 가까이 가벼운 공차중량과 6단 자동변속기의 효율적인 동력 전달 덕분이다.
필랑트는 도심 주행의 최대 75%를 전기 모드로 달릴 수 있는 E-테크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핵심이다. 변속 충격이 거의 없는 멀티모드 변속기와 결합해 전기차에 가까운 부드러운 주행 질감을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즉, 폭발적인 가속보다는 효율과 전동화 체감에 집중한 설정이다.
공인 복합연비는 그랜저 하이브리드가 18.0km/L(18인치 휠 기준)로 필랑트의 15.1km/L(19-20인치 휠 기준)보다 우세하다. 정숙성 역시 그랜저의 강점이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과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더해져 장거리 운행에서 편안함을 극대화했다. 필랑트 역시 이중 접합 차음 유리를 적용했지만, 크로스오버 형태의 구조적 특성상 풍절음에서는 다소 불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두 차량은 우열을 가리기보다 소비자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갈리는 모델이다. 세단의 안락함과 검증된 품질, 높은 연비를 원한다면 그랜저가 익숙한 정답에 가깝다. 반면, 새로운 디자인과 압도적인 공간 활용성, 전기차와 유사한 주행 감각을 경험하고 싶다면 필랑트는 충분히 매력적인 대안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