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명가 자존심 버렸나, 쿠페형 실루엣에 담긴 새로운 정체성

순수 전기차로 첫 출발, 8800억 쏟아부은 공장의 진짜 속내



랜드로버의 상징과도 같던 각진 차체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브랜드 정체성을 뒤흔든 이번 변화의 배경에는 급진적인 ‘디자인 변화’와 브랜드의 미래를 건 ‘전동화’,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플랫폼 공유’ 전략이 있다.

JLR 코리아가 공개한 신차 ‘레인지로버 GT’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존 라인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세그먼트를 개척하는 다섯 번째 독자 모델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레인지로버의 새로운 방향성이 자리 잡고 있다.



각진 차체 버린 이유, 플랫폼 공유에 있었다



오프로드 명가의 오랜 정체성이었던 박스형 실루엣은 공기 저항을 키워 전기차 시대에는 약점으로 작용했다. 레인지로버 GT는 이 딜레마를 과감한 디자인 변화로 풀었다. 낮아진 전면부와 날렵한 헤드램프는 스포츠카를 연상시키며, 전체적으로 쿠페에 가까운 유선형 실루엣을 택했다.

이러한 파격의 근원은 JLR이 새롭게 선보인 EMA 플랫폼이다. 레인지로버 이름으로 나오는 첫 순수 전기차인 GT는 이 플랫폼을 차세대 재규어 전기 세단과 공유한다. 두 브랜드의 특성을 한 지붕 아래 녹여내야 했기에 기존의 디자인 언어를 고수할 수 없었던 셈이다. 온로드 주행 성능과 전지형 대응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설계 의도가 엿보인다.



8800억 투자, 전동화 전환의 시작을 알리다



초기 모델은 배터리 전기차 단일 구성으로 출시되지만, 시장 반응에 따라 하이브리드 모델과 5인승 옵션이 추가될 예정이다. 소비자의 선택지를 단계적으로 넓히는 전략이다. 운전석은 기존 계기판 대신 슬림형 디스플레이가 자리하고, 센터패시아에는 대형 인포테인먼트 화면 하나만을 배치해 미래지향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생산은 영국 헤일우드 공장이 맡는다. JLR은 이 공장의 전동화 전환을 위해 약 5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약 88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브랜드의 전동화 로드맵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세부 제원은 올해 안에 발표되며, 양산은 2027년, 고객 인도는 2028년형 모델부터 시작된다. 당장 구매를 고민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랜드 투어러급 승차감과 고성능 전기 SUV를 동시에 원하는 소비자라면 앞으로 공개될 정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JLR 영국 헤일우드 공장 / JLR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