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스펙보다 중요한 건 ‘마지막 주행거리’, 폐차 직전 내구성 순위 공개
화려한 수입차들 모두 제치고 ‘가장 오래 버틴 차’ 1위에 오른 의외의 단종 모델
자동차의 진짜 가치는 화려한 신차 시절 스펙이 아닌, 마지막 순간에 드러난다. 폐차 직전까지 얼마나 긴 거리를 버텨냈는지가 바로 그 증거다. 최근 발표된 한 통계는 이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컨슈머인사이트와 CL M&S가 2025년 한 해 동안 폐차 및 말소된 승용차 47만여 대를 전수 분석한 결과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점은 한 단종된 국산 대형 SUV가 쟁쟁한 수입차들을 모두 제치고 내구성 왕좌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생애 주행거리, 내구성, 단종 모델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순위를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상위권은 대부분 대형 SUV가 차지하며 덩치가 클수록 오래 버틴다는 속설을 일부 증명했다.
수입차 제치고 1위 차지한 의외의 이름
조사 결과 가장 오래 달린 차는 2015년 단종된 현대차 베라크루즈였다. 말소된 베라크루즈 차량의 86.3%가 20만 km 이상을 주행한 뒤 폐차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생애 주행거리는 약 30만 5000km로, 조사 대상 중 유일하게 30만 km를 넘긴 모델이다.
베라크루즈의 독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4년 단종된 기아 모하비 역시 평균 29만 4000km를 달려 2위에 올랐다. 현재 판매 중인 신차 중에서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와 렉서스 RX가 나란히 20만km 이상 주행 비율 81.3%를 기록했지만, 평균 주행거리는 베라크루즈에 미치지 못했다.
오래 버티는 내구성의 배경은 따로 있었다
베라크루즈가 이토록 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배경에는 검증된 파워트레인과 튼튼한 하체가 있다. 후기형에 탑재된 V6 3.0L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255마력, 최대토크 48.9kg·m의 넉넉한 힘을 발휘했다. 여기에 전륜 맥퍼슨 스트럿,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 조합은 안정적인 승차감을 제공했다.
애초에 설계 방향 자체가 연비 효율성보다는 오래 버티는 내구성에 초점을 맞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당시 경쟁 모델 대비 무거운 차체와 다소 낮은 연비는 단점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오히려 튼튼함의 증거로 재평가받고 있다.
장수명 데이터만 믿고 덜컥 사면 안 되는 이유
뛰어난 내구성 데이터만 보고 중고 베라크루즈 구매를 결정하는 것은 성급하다. 단종된 지 오래된 대배기량 디젤 SUV인 만큼 꼼꼼히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다. 만약 이 차를 중고로 구매한다면 DPF(매연저감장치)와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 계통의 정비 이력을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
하체 부싱과 서스펜션의 마모 상태, 변속기 오일 교환 주기 등도 필수 점검 항목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순정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는 점을 고려하면, 정비 이력과 함께 부품 재고 상황까지 알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이번 조사는 신차의 화려함보다 끝까지 버텨내는 힘이 진짜 내구성의 척도임을 보여준다. 최근 출시되는 SUV들이 아직 상위권에 오르지 못한 것은, 이들 역시 시간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