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유성, 76세로 생 마감…“개그맨이라는 단어 만든 사람”
후배 개그맨들 눈물 추모…“영원히 잊지 않겠다”
전유성은 지난 25일 오후 9시 5분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위중한 상태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가족과 동료들의 곁을 떠났다.
1949년생인 전유성은 1969년 TBC ‘전유성의 쑈쑈쑈’ 방송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한 뒤 코미디언으로 전향해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등 수많은 인기 프로그램에서 활약했다. 특히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처음 도입하고, ‘개그콘서트’의 출범과 정착을 주도하며 한국 코미디의 흐름을 바꿔 놓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공개 코미디 무대를 개척하고 무명 개그맨들을 발굴·지원하며 세대교체를 이끌어온 그의 발자취는 한국 코미디 역사 그 자체다.
이경실은 병원에서 고인을 찾아 “하하하, 우리 오빠 섹시하게 누워 계시네”라고 농담을 건네자 전유성이 “너희들 보라고 이러고 있지”라며 응수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와줘서 고맙다. 늘 자랑스럽다”는 고인의 말을 전하며 “이제 아프지 말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박준형 또한 “지난 6월만 해도 부축해 드렸는데… 삶이 참 짧다”며 눈물을 삼켰고, 김영철은 방송 중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책 세 권을 사주시며 조언을 아끼지 않던 선배님이었다”고 추모했다.
그의 생전 업적과 철학을 기리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전유성 선생님은 ‘개그맨’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고, 최초의 공개 코미디 무대를 열어 한국 코미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구자”라며 “웃음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넨 분”이라고 평가했다.
전유성은 지난해부터 급성 폐렴, 부정맥, 코로나19 후유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팬들의 걱정을 샀다. 당시 그는 “코로나 이후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식욕이 떨어졌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럼에도 후배 개그맨들의 책 기증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무대를 찾아 웃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희극인장으로 치러진다. 생전 무명 후배들을 발굴하고 한국 코미디의 길을 넓히는 데 인생을 바친 그의 유언처럼, 전유성의 이름은 이제 별이 되어 한국 코미디 역사 속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