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이어진 건강 이상설, 동료들의 우려가 현실로
‘대발이 아버지’부터 ‘야동 순재’까지... 시대를 풍미한 배우의 마지막 길

한국 방송계의 큰 별, 원로 배우 이순재가 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 측은 고인이 25일 새벽 별세했다고 전하며 방송계와 대중을 큰 슬픔에 잠기게 했다.

영화 ‘안녕하세요’ 스틸컷. 디스테이션 제공


고인은 지난해까지 국내 최고령 현역 배우로 무대와 스크린,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식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건강 이상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난해 10월 예정됐던 연극 공연을 취소하고, 지난 4월 한국PD대상 시상식에도 불참하면서 팬들의 우려를 샀다.

최근 동료 배우들의 입을 통해 건강 악화 소식이 전해지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배우 박근형은 지난 8월 한 연극 간담회에서 “이순재 선생님을 뵙고 싶었지만 꺼리셔서 찾아뵙지 못했다”며 “다른 사람을 통해 듣기로는 좋은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후배 정동환 역시 지난달 시상식에서 “이순재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으신 걸로 안다. 건강이 회복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공개적으로 쾌유를 빌기도 했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에서 대한민국 대표 배우로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한 엘리트 출신이다. 대학 시절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의 ‘햄릿’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한 이래,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한국 대중문화의 산증인으로 활동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방송 활동을 시작한 그는 ‘나도 인간이 되련다’,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야인시대’ 등 14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하며 한국 방송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시대의 아버지를 연기하다



고인의 수많은 대표작 중에서도 1991년 방영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이 작품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인 ‘대발이 아버지’ 이병태 역을 맡아 최고 시청률 65%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국민 아버지’ 반열에 올랐다.

또한 ‘허준’, ‘상도’, ‘이산’ 등 굵직한 사극에서는 묵직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았고, 2006년에는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 순재’라는 파격적인 캐릭터로 변신해 젊은 세대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연기 활동 외에도 제14대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고 이순재. 한국 대중문화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연예계와 팬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