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판매량 역대 최저 기록,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았던 국산 경차 시장
고금리·고물가에 중고차 시장 중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인기, 그 이유는?
레이 EV / 기아
한때 ‘국민차’, ‘서민의 발’로 불리며 국내 자동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경차 시장이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소형 SUV의 공세와 전반적인 차량 가격 상승에 밀려 존폐 기로에 섰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의 기미가 보인다.
판매량 급감의 배경에는 신차 부재와 소비 심리 변화가 자리 잡고 있으며, 최근의 관심 증가는 역설적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과 중고차 시장의 활성화 덕분이다. 한때 외면받던 경차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21만대에서 7만대로, 끝없는 추락
스파크 / 쉐보레
국내 경차 시장의 전성기는 2012년으로, 당시 연간 판매량은 21만 6천여 대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꾸준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1년에는 결국 10만 대 선이 무너졌고, 현대차 캐스퍼와 기아 레이 EV가 출시되며 2022년과 2023년 잠시 반등하는 듯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경차 신차 판매량은 7만 4600대에 그쳤다. 이는 전년 대비 24.8%나 급감한 수치이자,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래 역대 가장 낮은 기록이다. 시장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선택지 부족과 소형 SUV의 그림자
레이 / 기아
판매량 급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좁아진 선택지가 꼽힌다. 과거 경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쉐보레 스파크가 단종되면서 현재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국산 경차는 기아 모닝과 레이, 현대차 캐스퍼가 전부다.
신모델 부재 속에서 소비자들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소형 SUV로 향했다. 경차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도 더 넓은 공간과 다양한 편의 사양을 갖춘 소형 SUV가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경차만의 강점인 ‘가성비’가 희석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고물가 시대의 역설, 다시 주목받는 경차
캐스퍼 / 현대자동차
그런데 올 초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끝없이 오르는 신차 가격과 고금리 기조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다시 경차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1월 경차 판매량은 8211대로, 전년 같은 달보다 10.9% 증가하며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특히 현대차 캐스퍼는 계약 후 출고까지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치솟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나타났다. 신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유지비 부담이 적은 경차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신차 대신 중고차 시장에서 부활
이러한 흐름은 중고차 시장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신차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출고 대기가 길어지자, 많은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몰렸다. 실제로 지난 1월 중고차 거래량 상위 10개 모델 중 4개가 경차였다.
기아 모닝(3841대), 쉐보레 스파크(3149대), 기아 뉴 레이(2877대), 레이(2044대)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뜨거운 인기를 증명했다. 신차 시장에서는 역대 최저 기록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경제 불황 속에서 경차의 본질적인 가치가 다시 빛을 발하며 조용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