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깊이와 날카로운 사회 풍자로 지적 쾌감을 안겨줄 넷플릭스 속 스페인 영화들
스페인 영화는 할리우드의 문법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폭발적인 전개 대신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집요하게 파고든다.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침묵과 시선, 상징적 장치를 통해 표현하며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영웅의 승리보다 평범한 인간의 고뇌를, 통쾌한 결말보다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곱씹을 만한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넷플릭스에서 지금 바로 만나볼 수 있는 스페인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거짓과 진실의 정교한 두뇌 게임, ‘인비저블 게스트’(세번째 손님)
성공한 사업가 ‘아드리안’이 내연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승률 100%의 변호사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아드리안의 ‘증언’과 사건의 ‘재구성’을 반복하며 관객을 교묘하게 속인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치밀한 서사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대사 중심의 밀실극 형태로 진행되며, 감정보다 지성을 자극하는 유럽식 심리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준다.
평론 전문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83%를 기록하며 “히치콕 이후 가장 세련된 스페인식 반전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극한의 고립이 던지는 생존의 의미, ‘노웨어’
영화는 미아라는 한 인물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극한의 고립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생존기를 그린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 뱃속의 아이를 ‘살려내야만 하는’ 주인공의 처절한 사투는 모성이라는 감정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배우 안나 카스틸로의 압도적인 연기는 거대한 바다라는 상징적 공간과 맞물려 억압과 자유, 생존과 인간성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한정된 공간과 인물로 이토록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어낸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직 감옥이 비추는 우리 사회의 민낯, ‘더 플랫폼’
‘더 플랫폼’은 ‘수직 자기 관리 센터’라는 기괴한 감옥을 배경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음식이 내려오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 상층부는 포식을, 하층부는 굶주림과 폭력을 마주한다. 주인공 ‘고렝’은 이 비인간적인 시스템 안에서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고, 또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깨닫는다.
“현대 자본주의의 압축판”이라는 가디언지의 평가처럼, 영화는 상징적인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재난을 넘어 존엄을 말하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이 영화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를 그리면서도, 재난 포르노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적 딜레마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히 생존을 위해 금기를 넘어서야 했던 이들의 내면적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지키려 했던 연대를 절제된 연출로 담아내며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J.A. 바요나 감독은 실제 안데스 설원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극도의 사실감을 구현해냈고, “잔혹하지만 숭고하다”는 관객들의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