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갔다가 매표소에서 당황
현지인은 1디나르, 한국인은 50디나르
같은 곳 보는데 50배 더 내라고?

사진=생성형 이미지
세계적인 관광지에 도착해 신나게 매표소로 향했는데, 앞사람이 산 표와 내 표의 가격이 전혀 다르다면 어떨까. 같은 문으로 들어가 같은 유적을 보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몇 배, 심한 곳은 수십 배를 더 내야 한다. 바가지도 사기도 아니다. 정부와 관광 당국이 공식적으로 가격을 다르게 정해놓은 ‘이중 가격제’다. 모르고 갔다가는 유적보다 매표소 가격표를 먼저 사진 찍게 될지도 모른다.
사진=요르단 페트라
■ “나는 1디나르, 당신은 50디나르”…페트라의 충격적인 가격표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촬영지로 유명한 요르단 페트라. 붉은 사암 절벽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알카즈네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이 찾아오지만 매표소에서는 국적에 따라 전혀 다른 가격표를 마주한다.

요르단 관광 당국이 안내하는 페트라 1일 입장료는 요르단인이 1디나르다. 반면 요르단에서 1박 이상 머무는 외국인 관광객은 50디나르를 내야 한다. 정확히 50배 차이다.

더 놀라운 조건도 있다. 요르단에 숙박하지 않고 당일 페트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의 1일 입장료는 90디나르까지 올라간다. 현지인 요금과 비교하면 무려 90배다.

외국인 여행객이라면 ‘조던 패스’도 비교해볼 만하다.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페트라를 비롯해 제라시, 와디럼 등 여러 관광지 입장과 비자 비용을 묶을 수 있어 요르단을 여러 날 여행할 때 유용할 수 있다.
사진=제라시, 생성형 이미지
■ “현지인은 동전 하나면 되는데”…제라시에서는 20배 낸다

페트라만 특별한 사례라고 생각했다면 제라시에서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이 대규모로 남아 있어 ‘중동의 폼페이’로 불리는 곳이다.

제라시 입장료는 요르단인 0.5디나르, 외국인 10디나르다. 같은 유적을 둘러보는데 외국인이 20배를 내는 셈이다.

암만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암만 시타델도 비슷하다. 요르단인은 0.25디나르, 외국인은 3디나르다. 영화 ‘마션’ 촬영지로도 유명한 와디럼 역시 요르단인은 1디나르, 외국인은 5디나르로 책정돼 있다.

한 곳만 보면 큰 부담이 아닐 수 있지만 페트라부터 제라시, 암만 시타델, 와디럼까지 유명 관광지를 연달아 방문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현지인이 지불하는 관광비와 외국인 여행자의 지출 차이가 점점 커진다.
사진=생성형 이미지
■ 피라미드 앞에서 “왜 나만 700?”…현지인은 60파운드

이집트에서도 ‘외국인 가격’은 쉽게 발견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카이로 여행의 상징과 같은 기자 피라미드다.

기자 고원 일반 입장료는 이집트 성인 60이집트파운드, 외국인 성인 700이집트파운드다. 같은 피라미드를 보지만 외국인은 현지인의 11배 이상을 내야 한다.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고 싶다면 지갑을 한 번 더 열어야 한다. 대피라미드 내부 입장료는 외국인 성인 1000이집트파운드, 이집트인은 100이집트파운드다. 기자 고원 입장권과 별도로 필요한 티켓이다.

다른 유적에서는 차이가 더 커진다. 사카라 유적지 일반 입장권은 외국인 600이집트파운드, 이집트인 30이집트파운드다. 무려 20배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투어를 계획한다면 숙박비뿐 아니라 유적 입장료도 별도의 여행 예산으로 잡아두는 편이 좋다.
사진=여행지 이미지
■ “파라오 무덤도 외국인은 12배”…왕가의 계곡

룩소르까지 내려가도 가격표의 반전은 계속된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왕가의 계곡이다.

왕가의 계곡 일반 입장료는 외국인 성인 750이집트파운드다. 반면 이집트인은 60이집트파운드다. 외국인 여행자가 12배 이상 비싼 금액을 내는 셈이다.

학생 요금도 따로 구분된다. 외국인 학생은 375이집트파운드, 이집트 학생은 30이집트파운드다.

룩소르에서는 왕가의 계곡 하나만 보고 끝내는 여행객이 드물다.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 장제전 등 여러 고대 유적을 함께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각각의 입장권을 더하면 하루 관광비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
사진=이집트박물관
■ “같은 박물관 맞죠?”…30파운드 vs 550파운드

마지막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인근의 이집트박물관이다. 고대 이집트 유물을 대규모로 소장하고 있어 카이로의 대표적인 박물관으로 꼽힌다.

여기에서도 현지인과 외국인의 가격은 확연하게 갈린다. 이집트 성인 입장료는 30이집트파운드지만 외국인은 550이집트파운드다. 18배가 넘는 차이다.

학생 역시 이집트인은 10이집트파운드, 외국인 학생은 275이집트파운드로 구분된다. 단순히 성인과 학생을 나누는 것을 넘어 내국인과 외국인을 다시 구분해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처음 접하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것 아니냐’는 생각부터 들 수 있다. 하지만 페트라와 기자 피라미드, 왕가의 계곡 등의 가격 차이는 현장 직원이 임의로 붙인 금액이 아니라 당국이 공식적으로 구분해놓은 요금이다.

따라서 해외 유명 유적을 방문할 때는 블로그에서 본 오래된 입장료만 믿기보다 출발 직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외국인 요금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입장권이 여러 구역으로 나뉜 관광지는 내부 관람료까지 따로 계산해야 한다.

같은 줄에 서서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출구로 나오는데 누구는 동전 몇 개를 내고, 누구는 그 수십 배를 낸다. 해외여행에서 가장 강렬한 문화 충격은 거대한 피라미드나 고대 도시가 아니라 매표소에 붙어 있는 작은 가격표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