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차세대 전기차 ‘노이어 클라세’의 핵심 배터리 공급사로 중국 EVE에너지 선정.
17년간 이어온 삼성SDI와의 동맹 관계 변화에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기술력보다 가격과 현지화 효율이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iX3 실내 / BMW
독일의 자동차 제조사 BMW가 17년간 이어온 한국과의 배터리 동맹에 변화를 줬다.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 ‘노이어 클라세(Neue Klasse)’의 핵심 파트너로 중국의 EVE에너지를 선택한 것이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공급사 교체를 넘어,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경쟁 구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BMW의 선택 뒤에는 가격 경쟁력, 공급망 현지화, 그리고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세 가지 핵심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랜 신뢰 관계도 결국 비용 문제 앞에 무너진 것일까.
17년 동맹의 균열, 그 시작은 iX3
변화의 신호탄은 노이어 클라세 플랫폼의 첫 양산 모델인 ‘iX3’에서 터져 나왔다. BMW는 헝가리 데브레첸 공장에서 생산되는 이 차량의 심장, 즉 46파이(지름 46mm) 원통형 배터리의 핵심 공급사로 EVE에너지를 낙점했다. 2009년부터 이어져 온 삼성SDI와의 굳건한 협력 관계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정이다. 업계에서는 BMW가 차세대 플랫폼의 첫 단추를 중국 기업과 끼웠다는 점에서 상당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iX3 / BMW
EVE에너지는 BMW의 완성차 공장 인근에 약 1조 7000억 원을 투자해 대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 중이다. 2027년 본격 가동 전까지 초기 물량은 중국 현지 공장에서 조달한다. 이는 BMW가 공급망 다변화를 넘어, 생산 거점 현지화를 통해 물류 효율과 비용 절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 대신 중국, 공급망의 중심축 이동
이번 결정이 더욱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공급망의 무게 중심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삼성SDI가 헝가리 괴드 공장에서 생산한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는 구조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BMW는 노이어 클라세부터 원통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채택하며 공급망을 사실상 원점에서 재편하고 있다.
iX3 파워트레인 / BMW
EVE에너지를 초기 물량의 핵심 공급사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신규 협력사 추가 수준을 넘어선다. 이는 17년간의 파트너십보다 중국 업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우선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향후 iX3뿐만 아니라 노이어 클라세 기반의 다른 주력 차종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기술보다 가격, 달라진 평가 기준
전기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평가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에너지 밀도와 안정성 등 기술적 우위가 가장 중요한 척도였다면, 이제는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인 대량 공급 능력이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삼성SDI는 고니켈 기반 원통형 배터리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모두 갖춘 검증된 파트너다.
iX3 / BMW
그럼에도 BMW가 EVE에너지를 선택한 것은 가격과 공급 안정성에 더 높은 점수를 줬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EVE에너지의 고성능 삼원계 배터리 양산 경험은 아직 한국 기업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BMW는 EVE에너지가 노이어 클라세 전용 배터리를 별도 설계해 주행거리와 충전 효율을 확보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맞춤형 사양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대응 능력 또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됐음을 시사한다.
이번 BMW의 선택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만으로는 더 이상 시장 지배력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원가 경쟁력 확보와 고객사에 최적화된 현지 생산 체계 구축이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됐다. 노이어 클라세의 첫 배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EVE에너지 배터리 / EVE에너지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