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만나는 조지 밀러 감독의 독특한 판타지 로맨스.

이스탄불의 한 호텔 방, 낡은 병 속에서 깨어난 ‘지니’와 고독한 서사학자의 만남.

영화 3000년의 기다림 / kinolights
영화 3000년의 기다림 / kinolights


블록버스터급 액션이나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내키지 않는 밤, 조금은 지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충족감을 주는 작품을 찾는다면 넷플릭스의 ‘3000년의 기다림’은 흥미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거장 조지 밀러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황량한 사막의 광기 어린 질주를 그려낸 감독이 이번엔 이스탄불의 한 호텔 방,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두 인물의 대화로 극을 이끌어간다.

‘매드맥스’ 감독의 180도 다른 상상력

3000년의 기다림, 틸다 스윈튼 / kinolights
3000년의 기다림, 틸다 스윈튼 / kinolights


이야기는 서사학(Narratology)자인 알리테아 비니(틸다 스윈튼 분)로부터 시작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그녀는 이스탄불의 한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눈에 띈 낡은 유리병을 구매한다. 호텔로 돌아와 병을 닦던 그녀 앞, 믿을 수 없는 존재가 거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바로 병 속에 3000년간 갇혀있던 정령, ‘지니’(이드리스 엘바 분)다.

지니는 자유를 얻는 조건으로 알리테아에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알리테아는 모든 소원에 관한 이야기가 결국 ‘교훈’을 가장한 비극이나 경고로 끝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사학자다. 그녀는 소원 빌기를 망설이며, 오히려 지니에게 그가 3000년 동안 겪은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역제안한다.

영화는 지니가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시바 여왕과의 만남, 오스만 제국의 왕자들, 19세기 여성 천재)와 현재 호텔 방의 대화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조지 밀러 감독은 지니의 과거를 압도적인 시각효과와 화려한 색감으로 구현해낸다. ‘매드맥스’의 스케일과는 다르지만, 프레임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채우는 미장센은 그가 왜 ‘비주얼 마스터’로 불리는지 입증한다.

두 거장의 연기, ‘이야기’의 힘을 묻다

3000년의 기다림,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 kinolights
3000년의 기다림, 틸다 스윈튼, 이드리스 엘바 / kinolights
‘3000년의 기다림’의 핵심은 틸다 스윈튼과 이드리스 엘바, 두 배우가 뿜어내는 에너지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흰 목욕 가운을 걸친 두 사람이 호텔 방에서 나누는 대화로 채워진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설정이지만, 두 배우는 지적인 유희와 감정의 파동을 섬세하게 주고받으며 극을 촘촘하게 메운다.

틸다 스윈튼은 사랑이나 욕망을 경계하는 고독하고 이성적인 현대인을, 이드리스 엘바는 자유를 갈망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신화 속 존재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영화는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지니는 이야기(자신의 과거)를 통해 알리테아의 마음을 열려 하고, 알리테아는 그 이야기 속에서 진실과 욕망을 분석하려 든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현대 사회에서 ‘소원’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
3000년의 기다림 한장면
3000년의 기다림 한장면
한 영화 평론가는 “서로 다른 극단의 존재가 만나 ‘이야기’를 통해 서로를 구원하는 과정”이라며 “화려한 시각효과 속에 담긴 고독과 사랑에 대한 묵직한 질문이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엄청난 반전이나 숨 막히는 액션은 없지만, 두 거장의 연기 대결과 조지 밀러가 빚어낸 황홀한 비주얼, 그리고 ‘이야기’의 힘에 대해 곱씹어볼 거리를 찾는 이들에게 ‘3000년의 기다림’은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이다.
와플릭스 : “오늘 뭐 볼까?” 끝없는 고민은 이제 그만! 《뉴스와》가 넷플릭스 속 숨은 보석 같은 작품들을 대신 골라드립니다. 리모컨만 돌리다 하루를 날리는 일 없이, 확실한 재미와 새로운 발견을 보장합니다.
영화 3000년의 기다림 포스터 / 네이버영화
영화 3000년의 기다림 포스터 / 네이버영화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