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좌절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연대와 희망.
쌀쌀한 계절, ‘사람 냄새’ 나는 작품들.
11월에 들어서자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두꺼운 외투와 따뜻한 핫초코가 절실해지는 시기, 자극적인 서사나 화려한 볼거리 대신, 쌀쌀한 마음을 데워줄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필요한 때다.주말 밤, 뭉근한 온기를 채워줄 넷플릭스 속 작품 네 편을 모았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가 핫초코보다 더 진한 위로를 전한다.
호주 와이너리에서 찾은 인생의 ‘완벽한 조합’
영화 퍼펙트페어링 / 넷플릭스
첫 번째 추천작은 ‘퍼펙트 페어링(A Perfect Pairing, 2022)’이다. LA의 잘나가던 와인 수입사 매니저 ‘롤라’가 독립을 결심하고, 까다로운 고객을 잡기 위해 무작정 호주 와이너리로 떠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곳에서 만난 투박하지만 속 깊은 목장 관리자 ‘맥스’와 부딪히고 얽히며 벌어지는 로맨스가 주축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롤라’의 성장과 재도전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특히 노을 지는 호주의 광활한 포도밭과 농장의 따스한 풍경은 가을의 정취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인생의 새로운 ‘페어링’을 찾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든다.
벼랑 끝에서 건져 올린 기적, ‘희망’을 낚다
영화 블루 미라클 / 넷플릭스
실화 기반의 영화가 주는 울림은 강력하다. ‘블루 미라클(Blue Miracle, 2021)’은 코로나19로 재정난에 빠진 멕시코의 고아원 ‘카사 호가르’의 실화를 다룬다. 고아원이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원장 ‘오마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상금이 걸린 세계 낚시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다.
이들은 한때 전설이었지만 지금은 퇴물 취급받는 어부 ‘웨이드’와 어설픈 한 팀을 이룬다. 돈이 절실한 어른들과 순수한 아이들, 그리고 상처 입은 선장이 한 배에서 서로를 구원해가는 과정은 묵직한 감동을 안긴다. “포기하지 말라”는 정직한 메시지가 잔잔하지만 깊은 온기를 남긴다.
1등 로또가 넘긴 DMZ… 돈 앞에서 싹튼 ‘이상한 동지애’
영화 육사오(6/45) / 넷플릭스
돈 앞에서 이념도, 경계도 무너지는 황당한 설정은 시종일관 폭소를 유발한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어느새 싹트는 ‘브로맨스’와 이상한 동료애는 이 코미디 영화의 핵심적인 온기 포인트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벼운 웃음 속에 뼈 있는 질문을 던진다.
‘어설픈’ 선수들의 반란… “포기하지 마”
영화 드림 / 넷플릭스
축구공 한번 제대로 차 본 적 없는 홈리스 선수들과 오합지졸 감독의 조합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이병헌 감독 특유의 ‘말맛’ 유머 속에서,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점차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과정은 뭉클함을 자아낸다. 누군가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이야기가 가을 저녁,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소개된 네 작품은 장르도, 국적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기댄다는 것. 쌀쌀한 바람에 어깨가 움츠러드는 요즘,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위로가 될 작품들이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