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즐겁지만 손은 심심”... 오너들이 등 돌린 진짜 이유
‘국민 세단’ 그랜저의 유일한 맞수가 될 거라 믿었다. 기아 K8 이야기다. 2021년, 기아는 잘나가던 ‘K7’ 간판을 내리고 숫자를 8로 올렸다. 그랜저를 뛰어넘는 프리미엄 세단이 되겠다는 야심 찬 선언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K8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그랜저와의 판매량 격차는 2배 이상 벌어졌다. ‘성공 방정식’을 잘못 해석한 정체성 상실의 대가다.잘 나가던 K7은 왜 버렸나?
문제의 시작은 ‘K7’이라는 성공작을 스스로 버린 데 있다. K7은 감각적인 디자인과 합리적인 고급감으로 ‘스타일리시한 현실 드림카’라는 확실한 자리가 있었다. 그랜저와는 결이 다른, 자신만의 팬덤을 구축한 모델이었다.“눈만 즐겁다”... 5미터 거함의 속 빈 강정
K8이 내세운 5미터(전장 5,050mm)가 넘는 덩치와 12.3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 같은 화려한 사양도 소용없었다. 정작 운전자가 매일 만지는 소재의 질감, 즉 ‘감성 품질’이 발목을 잡았다. “눈은 즐겁지만 손끝은 심심하다”는 오너들의 평가는 뼈아프다.결정타는 ‘디자인의 방황’이었다. 기아의 새 시대를 열겠다던 얼굴이 “앞은 현대, 옆은 BMW, 뒤는 아우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그랜저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기아다움’을 잃게 만든 전략적 실수였다. 40~50대 핵심 고객층마저 “그래서 이 차 정체가 뭔데?”라며 혼란스러워했다.
‘수직 램프’로 구원 등판... K7의 교훈 되새길까
K8의 부진은 이름이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일깨웠다. 소비자가 원한 건 ‘정체성’이었다.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