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상용차 사업 재편의 서막, 대형 버스 생산 일원화 가능성
중국산 저가 공세와 배출가스 규제 강화, 노조는 고용 보장 요구하며 반발
국내 대형 버스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해온 기아 그랜버드의 운명이 중대 기로에 섰다. 기아의 버스 사업은 1971년 첫 생산 이후 약 55년간 명맥을 이어온 만큼, 이번 변화는 단순한 모델 조정을 넘어선다. 최근 기아 노사에 전달된 ‘생산 중단 계획’은 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결정의 배경에는 거세지는 ‘중국산 공세’와 내부의 ‘노사 갈등’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혀 있어 최종 결정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산 대표 대형 버스는 이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인가.
55년 역사 뒤흔드는 생산 중단 계획의 실체
기아가 최근 노사 고용안정위원회를 통해 전달한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주력 대형 버스 모델인 그랜버드의 생산을 향후 1~2년 내로 중단하고, 사실상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에 들어가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익성이 낮은 한 차종을 단종하는 차원을 넘어, 기아의 대형 버스 사업 철수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여진다.
업계에서는 이를 현대차그룹 차원의 상용차 사업 재편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그룹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형 버스 생산을 현대차로 일원화하고, 기아는 다른 분야에 집중하게 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1960년대 아시아자동차 시절부터 이어진 기아 버스의 유구한 역사가 막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중국산 저가 공세와 규제, 설상가상으로 겹쳤다
기아가 이토록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장 상황이 자리한다. 국내 대형 버스 시장은 수년간 수요가 정체되며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 여기에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운 중국산 전기버스가 보조금을 등에 업고 시장을 무섭게 잠식하면서 국산 버스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설상가상으로 매년 강화되는 배출가스 규제는 친환경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며 수익성을 크게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당장 눈앞의 판매량도 문제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 부담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결국 버스 업계도 가성비를 앞세운 해외 브랜드의 공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셈이다.
고용 문제로 번진 노사 갈등, 최종 결정은 안갯속
하지만 회사의 사업 재편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계획이 알려지자마자 노동조합은 즉각 강력한 반발에 나섰다. 전국금속노조 기아지부 광주지회는 사측이 구체적인 고용 보장 대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생산 중단 방침을 통보했다며 모든 노사 관련 협의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조 측의 요구는 명확하다. 현재 그랜버드를 생산하는 광주공장과 하남공장 소속 인력에 대한 명확한 고용 유지 방안과, 공장의 미래 비전을 담은 중장기 운영 계획을 먼저 제시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업 구조 재편이라는 회사의 생존 논리와 노동자의 고용 안정 요구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그랜버드의 미래는 한층 더 불투명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기아 그랜버드 생산 중단 문제는 이제 한 차종의 단종 여부를 넘어섰다. 글로벌 경쟁 심화, 산업 패러다임 전환, 그리고 국내 노사 관계라는 복잡한 방정식 속에서 기아가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