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 이슬 머금으면 빙판길보다 위험. 운전자들이 간과하는 젖은 낙엽

마찰 계수 0.2 수준 급감, 브레이크 밟아도 ‘미끌’... 전문가 경고

도로 위 젖은 낙엽의 위험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게 하는 형형색색의 낙엽이 운전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 위 흉기’로 돌변하고 있다. 특히 비가 오거나 아침저녁 이슬을 머금은 ‘젖은 낙엽’은 겨울철 공포의 대상인 ‘블랙 아이스(도로 살얼음)’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낭만적인 풍경에 속아 방심하고 젖은 낙엽 구간을 고속으로 통과하다가는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한다.

낭만 뒤에 숨은 ‘노란 빙판’의 실체

젖은 낙엽이 위험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마찰 계수’의 급격한 저하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조한 아스팔트 노면의 마찰 계수는 0.7~0.8 수준이지만, 낙엽이 젖어 도로를 덮을 경우 이 수치는 0.2~0.3까지 떨어진다. 이는 겨울철 빙판길의 마찰 계수와 맞먹거나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달리고, 멈추고, 방향을 트는 모든 행위는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마찰력에 의존한다. 마찰력이 이처럼 급격히 떨어지면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돌려도 차량은 운전자의 의도대로 제어되지 않고 그대로 미끄러지게 된다.

특히 은행잎이나 활엽수 잎처럼 잎 자체가 넓고 점성이 있는 낙엽은 젖었을 때 도로 표면에 ‘코팅’처럼 밀착된다. 교통안전 전문가 A씨는 “젖은 낙엽이 타이어의 트레드(홈)를 순간적으로 메워 물이 빠져나갈 길을 막아버린다”며 “이는 얇은 수막 위를 달리는 ‘수막현상’과 유사하며, 타이어가 노면 접지력을 완전히 상실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도로위 젖은 낙엽

예측 힘든 ‘숨겨진 복병’

젖은 낙엽은 블랙 아이스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가중된다. 블랙 아이스는 주로 터널 출입구나 다리 위, 그늘진 커브길 등 특정 구간에 집중되지만, 젖은 낙엽은 가로수가 있는 도심 외곽 도로나 산길 등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낙엽층이 도로의 실제 상태를 가린다는 점이다. 낙엽 더미 아래 숨겨진 포트홀이나 배수로 뚜껑, 작은 요철 등을 운전자가 미리 인지하기 어렵다. 이런 곳을 고속으로 통과하며 미끄러질 경우, 차량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스핀(Spin)하거나 도로 밖으로 이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륜구동 차량의 경우 코너 진입 시 가속 페달을 밟으면 하중이 뒤로 쏠리면서 앞바퀴 접지력이 낮아져 코너 밖으로 밀려나는 ‘언더스티어’ 현상이, 후륜구동 차량은 반대로 뒷바퀴가 미끄러지며 차체가 안쪽으로 도는 ‘오버스티어’ 현상이 발생하기 쉬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고 막는 유일한 길 ‘감속’과 ‘거리 확보’

전문가들이 젖은 낙엽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제1원칙은 ‘감속’이다.

젖은 낙엽이 깔린 구간을 발견하면 즉시 평소 속도의 30%에서 최대 50%까지 속도를 줄여야 한다. 또한, 앞차와의 차간거리도 평소의 1.5배에서 2배 이상 넉넉하게 확보해 돌발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브레이크 조작도 중요하다. 급제동은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고 미끄러지는 ‘슬립 현상’을 유발하므로 절대 금물이다. 브레이크 페달은 여러 번 나눠 밟는 ‘펌핑 브레이크’ 습관을 들이고, 가급적 기어 변속을 통해 속도를 줄이는 ‘엔진 브레이크’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
타이어 점검 필수
만약 차량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면, 운전자는 당황하지 말고 핸들을 미끄러지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조작해야 한다. 급격한 핸들 조작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타이어 점검은 기본이다. 마모가 심해 트레드 홈이 얕아진 타이어는 젖은 낙엽 위에서 배수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가을철 장거리 운전 전에는 반드시 타이어 마모 상태와 공기압을 점검해야 한다. 차체 자세 제어 장치(ESP)나 트랙션 컨트롤(TCS) 같은 안전 보조 시스템도 도움이 되지만, 물리적인 마찰력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태영 기자 tae0@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