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APEC·LPGA 투어 등 굵직한 행사 의전 차량 경쟁 ‘후끈’
단순 이동 수단 넘어 브랜드 정체성 보여주는 ‘움직이는 집무실’ 각광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10월, 자동차 업계가 ‘의전 차량’이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브랜드의 기술력과 품격을 세계 무대에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각국 정상부터 클래식 거장, 스포츠 스타까지 VIP들의 발이 되어주는 초호화 차량들의 면면이 화제다.
현대차 제네시스 국격 높인 192대의 행렬
현대자동차는 경주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의전 차량을 대거 투입하며 안방 주인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번 회의를 위해 지원된 차량은 총 192대에 달한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각국 정상과 배우자를 위해 준비된 113대의 제네시스 G90이다.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인 G90은 쇼퍼 드리븐(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차)의 정수로 불리며,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을 탑재해 비단길을 걷는 듯한 승차감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뒷좌석의 편의성은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에 버금가며, VIP들의 바쁜 일정 속 휴식을 책임졌다.
장관급 인사를 위해서는 G80 74대가 배치됐으며, 친환경 비전을 강조하기 위해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 3대와 모바일 오피스 2대도 함께 지원됐다.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인 만큼, 현대차는 이번 지원을 통해 K-모빌리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MW 필드의 여왕들을 위한 럭셔리 라운지
전남 해남에서 열린 국내 유일의 LPGA 투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는 BMW가 프리미엄 의전의 진수를 보여줬다. 대회 기간 동안 선수와 캐디들의 이동을 위해 XM, 7시리즈, X7, iX 등 120대 이상의 럭셔리 라인업이 총동원됐다.
특히 BMW XM은 M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탑재해 강력한 성능과 정숙성을 동시에 갖춘 모델로, 경기를 앞둔 선수들의 컨디션 조절에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BMW 관계자는 선수들이 경기 외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상의 이동 경험을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고 전했다.
예술가와 배우를 위한 움직이는 스위트룸
대량 생산 브랜드뿐만 아니라 특장차 브랜드와 수입차 브랜드의 틈새 공략도 돋보였다. 기아 카니발 하이리무진을 기반으로 컨버전(개조) 차량을 선보이는 케이씨모터스의 프리미엄 브랜드 ‘노블클라쎄’는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미도리와 피아니스트 키릴 게르스타인의 내한 공연 의전 차량으로 선정된 노블클라쎄 L4와 L9은 단순한 차량을 넘어선 ‘음악 감상실’을 구현했다. 포칼(Focal)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을 탑재해 차량 내에서도 공연장 수준의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게 했으며, 노면 충격을 최소화하는 MR 댐퍼 튜닝으로 예민한 연주자들의 피로도를 낮췄다.
푸조 역시 전남 광양 남도영화제 시즌2에서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했다. 210년의 역사를 지닌 푸조는 올 뉴 3008 스마트 하이브리드와 408, 5008 모델을 영화제 의전 차량으로 지원했다. 배우 최수종, 옥자연, 이성민 등 주요 참석자들은 푸조 차량을 이용하며 레드카펫을 밟았다.
업계 관계자는 의전 차량 선정이 과거에는 단순히 행사를 지원하는 차원이었다면, 최근에는 브랜드의 럭셔리 이미지와 기술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입을 모은다. VIP들이 선택한 차라는 타이틀은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신뢰를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국제 행사와 문화 예술 공연을 둘러싼 완성차 업체들의 구애 작전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