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각그랜저부터 7세대까지, 한눈에 보는 대한민국 ‘국민 성공카’ 그랜저 변천사
1986년, 대한민국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시절, 도로 위에는 새로운 ‘성공의 상징’이 등장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부와 명예의 증표로 여겨졌던 차, 바로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다. 이후 38년의 세월 동안 그랜저는 단순한 자동차 모델을 넘어, 대한민국 사회의 변화와 성장을 함께하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1세대 ‘각 그랜저’의 위엄부터 7세대 ‘디 올 뉴 그랜저’의 혁신까지, 대한민국과 함께 달려온 그랜저의 파란만장한 변천사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1세대: ‘각 그랜저’, 성공의 시대를 열다 (1986~1992)

그랜저 1세대 1986.07 / 출처 :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는 직선이 주는 중후함과 권위적인 디자인으로 인해 ‘각 그랜저’라는 전설적인 별명을 얻었다. 당시 최고급 세단의 대명사였던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을 참고한 듯한 직선 위주의 차체와 위엄 있는 전면부는 ‘회장님 차’, ‘성공한 사람의 차’라는 이미지를 단번에 각인시켰다. 이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판매하던 ‘로얄살롱 슈퍼’를 밀어내고 단숨에 대형차 시장의 왕좌를 차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출시 초기에는 2.0L 시리우스 엔진을 얹었으나, 이후 2.4L, V6 3.0L 엔진까지 라인업을 확장하며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전장 4,865mm, 전폭 1,725mm의 당당한 차체와 전륜구동 방식은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제공했으며, 최고급 모델에 걸맞은 다양한 편의 장비로 무장했다. 1세대 그랜저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고도성장기를 살아온 세대에게는 노력의 결실이었고, 다음 세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 그 자체였다.
주요 제원 (2.4 모델 기준): 전장 4,865mm, 전폭 1,725mm, 전고 1,430mm, 휠베이스 2,735mm, 2,351cc 직렬 4기통 엔진, 최고출력 123마력, 최대토크 19.9kgf·m
2세대: ‘뉴 그랜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등장 (1992~1998)

뉴 그랜저 2세대 1992.09 / 출처 : 현대자동차
1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디자인 철학으로 탄생한 2세대 모델은 공기역학적인 실루엣과 한층 커진 차체(전장 4,980mm)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특히 넓어진 실내 공간은 탑승자에게 최상의 안락함을 제공하며 고급 세단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기술적으로도 큰 진보를 이루었다. 운전석 에어백, ABS(안티록 브레이크 시스템), ECS(전자 제어 서스펜션) 등 당시로서는 최첨단 안전 및 편의 사양이 대거 적용되며 ‘프리미엄’이라는 개념을 국내 시장에 확립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V6 2.0, 2.5, 3.0, 3.5 등 다양한 엔진 라인업을 갖춰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판매량 역시 대폭 증가했다. 뉴 그랜저는 1세대가 쌓아 올린 ‘최고급차’의 명성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면서도, 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더해 그랜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주요 제원 (V6 2.5 모델 기준): 전장 4,980mm, 전폭 1,810mm, 전고 1,440mm, 휠베이스 2,745mm, 2,497cc V6 엔진, 최고출력 137마력, 최대토크 22.4kgf·m
3세대: ‘그랜저 XG’, 독자 개발로 세계를 향하다 (1998~2005)

그랜저 TG 3세대 1998.10 / 출처 : 현대자동차
그랜저 XG는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젊고 역동적인 스타일로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당시 국산차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프레임리스 도어(Frameless Door)를 채택하여 스포티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운전자 중심의 설계를 통해 주행의 즐거움을 강조했으며, V6 델타 엔진과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하이벡(HIVEC)’ 5단 자동변속기를 탑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주행 성능을 완성했다.
그랜저 XG의 가장 큰 의의는 ‘수출’에 있다. 독자 모델이었기에 ‘현대 XG’라는 이름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 시장에 본격적으로 수출되었으며, 역대 그랜저 중 가장 성공적인 수출 실적을 기록하며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는 아산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주요 제원 (V6 3.0 모델 기준): 전장 4,875mm, 전폭 1,825mm, 전고 1,420mm, 휠베이스 2,750mm, 2,972cc V6 엔진, 최고출력 182마력, 최대토크 25.7kgf·m
4세대: ‘그랜저 TG’, 대중 속으로 파고든 프리미엄 (2005~2011)

그랜저 TG 4세대 1992.01 / 출처 : 현대자동차
이러한 변화는 논란을 낳기도 했다. 출시 초기, 1세대부터 이어져 온 ‘후드 톱 엠블럼(Hood Top Emblem)’이 두 달 만에 사라지고 그릴에 현대 마크가 자리 잡자, “그랜저의 격이 낮아졌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는 보다 넓은 고객층을 아우르려는 현대차의 전략적 판단이었고,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랜저 TG는 스마트키 시스템, 블루투스 핸즈프리,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IT 기술을 접목하여 ‘스마트한 차량’으로 진화했다. 또한, LPI 엔진 모델이 큰 인기를 끌며 고급 택시 시장과 렌터카 시장을 장악, 그랜저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닌, 중산층과 중장년층이 사랑하는 ‘국민 고급차’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TG는 ‘편안하고 신뢰도 높은 고급 세단’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요 제원 (V6 2.7 모델 기준): 전장 4,895mm, 전폭 1,850mm, 전고 1,495mm, 휠베이스 2,780mm, 2,656cc V6 엔진, 최고출력 192마력, 최대토크 25.5kgf·m
5세대: ‘그랜저 HG’, 화려함의 절정, ‘국민차’ 등극 (2011~2016)

그랜저HG 5세대 2011.01 / 출처 : 현대자동차
플랫폼은 YF 쏘나타의 것을 공유했지만, 차체 강성을 대폭 향상시키고 휠베이스(2,845mm)를 늘려 한층 더 넓고 안락한 실내 공간을 확보했다. 무엇보다 그랜저 HG는 첨단 기술의 향연이었다. 국내 최초로 차량 간 거리를 스스로 조절하고 정지, 재출발까지 지원하는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을 적용했으며, 9개의 에어백,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 등 최고 수준의 편의 및 안전 장비를 탑재했다.
강력한 성능의 GDi 엔진 라인업을 필두로, 이후 디젤과 하이브리드 모델까지 추가하며 파워트레인의 다변화를 이끌었다. 그랜저 HG는 출시와 동시에 베스트셀링카 순위 최상단을 차지하며 ‘국민 고급차’를 넘어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주요 제원 (V6 3.0 GDi 모델 기준): 전장 4,910mm, 전폭 1,860mm, 전고 1,470mm, 휠베이스 2,845mm, 2,999cc V6 GDi 엔진, 최고출력 270마력, 최대토크 31.6kgf·m
6세대: ‘그랜저 IG’, 젊음과 전통 사이의 고뇌 (2016~2022)

그랜저 IG 6세대 2016.11 / 출처 : 현대자동차
진정한 변화는 2019년 페이스리프트 모델인 ‘더 뉴 그랜저 IG’에서 나타났다. ‘풀체인지급 변화’라고 불릴 만큼 파격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전면부를 가득 채운 보석 모양의 ‘파라메트릭 쥬얼(Parametric Jewel)’ 패턴 그릴과 히든 라이팅 주간주행등(DRL)은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선사했다. 이 디자인은 초기에는 “파격적이다”, “적응이 안 된다” 등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시장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랜저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더 뉴 그랜저 6세대 2019.11 / 출처 : 현대자동차
주요 제원 (V6 3.0 GDi 모델 기준): 전장 4,930mm, 전폭 1,865mm, 전고 1,470mm, 휠베이스 2,845mm, 2,999cc V6 GDi 엔진, 최고출력 266마력, 최대토크 31.4kgf·m
7세대: ‘디 올 뉴 그랜저’, 헤리티지를 품은 혁신 (2022~현재)

디 올 뉴 그랜저 7세대 2022.11 / 출처 : 현대자동차
가장 큰 특징은 1세대 ‘각 그랜저’에 대한 오마주다. C필러 뒤에 위치한 ‘오페라 글라스’와 1세대 모델의 스티어링 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원 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38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디자인 유산의 계승을 명확히 보여준다. 반면, 전면부를 가로지르는 ‘수평형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는 지금까지 어떤 차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래적인 인상을 선사하며 그랜저의 새로운 시대를 선포한다.
전장은 5,035mm에 달하며 이전 세대를 압도하는 웅장한 차체를 자랑한다. 가격 또한 한 체급 위로 평가받던 기아 K8보다 높게 책정될 만큼 대대적인 고급화를 단행했다. 이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아래에서 현대차 라인업의 정점이자 플래그십으로서 그랜저의 위상을 재정립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2.5 가솔린, 3.5 가솔린, 1.6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 등 최신 ‘스마트스트림’ 파워트레인을 탑재했으며, 역대급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2023년 한 해에만 11만 3천여 대를 판매하며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그랜저’라는 이름이 가진 강력한 네임밸류와 신뢰가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하는 결과다. 7세대 그랜저는 과거의 영광을 현재의 혁신으로 재탄생시키며, 또 다른 30년을 향한 위대한 항해를 시작했다.
주요 제원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2.5 모델 기준): 전장 5,035mm, 전폭 1,880mm, 전고 1,460mm, 휠베이스 2,895mm, 2,497cc 가솔린 엔진, 최고출력 198마력, 최대토크 25.3kg·m
그랜저의 38년 역사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사이자, 우리 사회의 욕망과 성취가 투영된 거울과 같다. 권위의 상징이었던 ‘각 그랜저’에서 출발해, 이제는 헤리티지와 혁신을 품은 ‘디 올 뉴 그랜저’에 이르기까지. 그랜저는 언제나 시대를 앞서가며 스스로를 뛰어넘어왔다. 앞으로 그랜저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을 달리게 될지, 그 여정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