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벌써 N번째 셧다운, ‘전기차 무덤’이 현실로 다가왔다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심장부, 울산 1공장의 생산라인이 또다시 침묵에 잠겼다. 아이오닉 5를 생산하는 이곳은 올해만 벌써 수차례 가동과 중단을 반복하고 있다. 최대 700만 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할인을 내걸어도 소비자들이 끝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팔리지 않고 쌓인 재고가 결국 공장의 숨을 멎게 한 것이다. 한때 미래 기술의 총아로 불렸던 전기차가 어쩌다 외면받는 신세가 되었을까.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출처=현대차)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출처=현대차)


‘세계 1등’ 찬사 무색…안방에서 외면받는 서러움

아이러니하게도 공장이 멈춰선 지금도, 현대차의 전기차는 해외에서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이오닉 시리즈는 ‘자동차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워즈오토 10대 엔진’에 4년 연속 이름을 올렸고, 유럽의 까다로운 안전 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상품성을 인정받은 셈이다.
아이오닉5
아이오닉5


하지만 안방의 현실은 처참하다. 해외의 호평이 무색하게 국내 판매량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누적 손실액만 1,000억 원을 훌쩍 넘겼다는 소식은 이 차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가 인정한 명차가 어째서 고향에서만큼은 서러운 ‘재고’ 신세로 전락한 것일까.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HMGMA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5 차량에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출처=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HMGMA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5 차량에 기념 서명을 하고 있다.(출처=현대차)


소비자가 지갑 닫은 진짜 이유, ‘죽음의 계곡’에 빠지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 즉 ‘죽음의 계곡’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신기술에 열광하던 얼리어답터들은 이미 전기차를 손에 넣었지만, 이제 차를 사야 할 대다수의 평범한 소비자들은 구매를 주저하고 있다는 의미다.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출처=현대차)
현대차 울산공장 아이오닉 5 생산라인 (출처=현대차)


그들이 망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보조금을 받아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비싼 가격. 둘째, 어디를 가든 마음 편히 충전하기 힘든 부족한 인프라. 셋째, 심심찮게 들려오는 화재 소식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 중고차 가격이다. ‘지금 사면 손해’라는 인식이 시장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안에서는 재고, 밖에서는 장벽…진퇴양난의 현대차

설상가상으로 밖으로 나가는 길도 순탄치 않다. 최대 시장인 미국은 높은 관세 장벽을 쌓아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고, 유럽에서는 중국산 ‘반값 전기차’의 무서운 공세에 맞서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다. 안에서는 팔리지 않고, 밖에서는 팔기 힘든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현대 더 뉴 아이오닉 5 측후면 (출처=현대차)
현대 더 뉴 아이오닉 5 측후면 (출처=현대차)
결국 생산라인이 멈추면서 그 피해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까지 번지고 있다. 특근이 사라지고 임금이 줄어들면서, 노동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일부 라인에서는 생산 속도를 늦추는 ‘피치다운’까지 검토되는 실정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 안전성 테스트2 (출처=현대차)
현대차 아이오닉5 안전성 테스트2 (출처=현대차)
현대차의 이번 공장 중단 사태는 단순한 생산량 조절을 넘어선, 시장의 강력한 경고 메시지다. 이제 ‘할인’이라는 임시방편만으로는 얼어붙은 소비자의 마음을 녹일 수 없다. 가격, 충전, 안전, 중고차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을 해소할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전기차의 눈물은 당분간 멈추기 어려워 보인다.

동치승 기자 don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