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 캐즘 속 이례적 행보, 직접 소유 대신 임차 선택한 속내
LG엔솔은 4조 현금 확보… 양사 모두 웃게 된 ‘윈윈’ 전략의 정체

혼다 LG 합작 공장 - 출처 : 혼다
혼다 LG 합작 공장 - 출처 : 혼다




전기차 수요 둔화, 이른바 ‘EV 캐즘’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투자 속도를 조절하는 가운데, 일본 혼다의 이례적인 행보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혼다는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에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JV)의 건물과 부속 설비 등 자산을 직접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기차 전환에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던 혼다의 결정이기에 시장의 충격은 더욱 크다. 업계에서는 단순한 생산 확대를 넘어선 고도의 재무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무 부담 던 묘수, 사서 다시 판다





혼다 CEO - 출처 : 혼다
혼다 CEO - 출처 : 혼다


이번 인수의 핵심은 ‘자산 유동화’ 전략에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혼다는 인수한 공장 자산을 제3의 리스 회사에 재매각한 뒤, 이를 다시 임차해 사용하는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을 추진한다.

이 구조가 현실화되면 혼다는 막대한 초기 투자금 부담과 자산 보유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공장을 직접 소유하는 대신 월 임차료를 내는 방식으로 전환해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면서도, 생산 거점은 계획대로 운영할 수 있는 셈이다. 이는 대규모 현금이 묶이는 것을 피하고, 확보된 자금을 연구개발(R&D)이나 다른 핵심 분야에 투입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LG에너지솔루션 입장에서도 이는 ‘남는 장사’다. 자산 매각을 통해 약 4조 20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현금을 조기에 확보하게 된다. 이는 초기 설비 투자(CAPEX) 부담을 덜고, 유입된 현금으로 재무 구조를 개선하거나 다른 유망한 프로젝트에 재투자할 여력을 만들어준다. 양사 모두에게 ‘윈윈’인 셈이다.



전기차 콘셉트 - 출처 : 혼다
전기차 콘셉트 - 출처 : 혼다


투자는 계속된다, 美 공급망은 포기 못해



양사는 이번 자산 거래가 기존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및 운영 계획 변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합작공장은 예정대로 내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가며, 여기서 생산된 배터리는 북미 시장에서 판매될 혼다와 아큐라 전기차 모델에 탑재된다.

혼다가 전기차 시장 둔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배터리 공급망을 유지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때문이다. IRA에 따르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혜택이 주어지며,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역시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해야 한다.

결국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이 필수적이다. 혼다의 이번 결정은 단기적인 수요 둔화에 흔들리기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의 중장기적 생존과 성장을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전기차 콘셉트 - 출처 : 혼다
전기차 콘셉트 - 출처 : 혼다


EV 혹한기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



결론적으로 이번 거래는 전기차 투자의 후퇴가 아닌, 불확실성이 큰 시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면적인 투자 중단이나 무리한 확장 대신, 재무 구조를 유연하게 바꾸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현실적인 해법을 찾은 것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전기차 혹한기 국면에서 무리한 투자 확대도, 전면 중단도 아닌 최적의 중간 해법을 찾은 것”이라며 “혼다와 LG에너지솔루션 모두 당장의 위기를 현명하게 넘기면서 다가올 시장 반등을 준비하는 장기전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