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와 그랜저 사이에 낀 것도 서러운데…결정적 패착은 따로 있었다
14년 역사 뒤로하고 EV·PBV 생산 라인으로 전환
K9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기아의 플래그십 세단 K9이 14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올해 연말 단종된다. 한때 브랜드의 기술력을 상징하던 모델의 쓸쓸한 퇴장이다.
시장에선 경쟁 심화, 판매 부진, 그리고 결정적인 전동화 전략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플래그십의 몰락 뒤에는 복합적인 시장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K9은 2012년 오피러스의 후속으로 등장해 기아의 기함 역할을 맡았다. 최상위 트림에는 5.0리터 V8 가솔린 엔진을 얹으며 국산 프리미엄 세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8년 2세대 모델 출시 이후에는 기업 임원 의전용 차량으로도 인기를 끌며 연간 6천 대 이상 판매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K9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제네시스와 그랜저 사이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상황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급성장과 함께 달라졌다. G80과 G90이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하면서 K9의 핵심 고객층이 대거 이탈했다. 브랜드 파워에서 밀리면서 K9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최근 대형 SUV의 약진도 악재로 작용했다.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과 편의 사양을 갖춘 SUV가 개인 고객은 물론 법인 의전차량 시장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1억 원에 가까운 예산으로 의전용 차량을 고민한다면, 선택지는 사실상 제네시스 G90이나 카니발 하이리무진으로 좁혀지는 게 현실이다.
K9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판매량 수치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2022년 6,585대였던 판매량은 지난해 1,581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734대에 불과해 역대 최저 실적이 유력하다.
한 체급 아래인 그랜저의 상품성 강화도 K9에는 부담이었다. 차체와 고급 사양이 강화된 신형 그랜저가 일부 대형 세단 수요마저 흡수하며 K9은 위아래로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하이브리드 외면한 대가가 너무 컸다
경쟁 심화 속에서 K9이 꺼내 들 카드는 마땅치 않았다. 특히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로 재편되는 시장 흐름에 전혀 대응하지 못한 점이 결정적 패착으로 꼽힌다.
기아는 K5, K8 등 주력 세단에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적극적으로 투입했지만, 정작 플래그십인 K9에는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추가하지 않았다. 높은 연비와 유지비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만 고집한 K9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친환경차 선호 트렌드를 외면한 결과, K9은 시장에서 점차 잊혔고 결국 단종이라는 수순을 밟게 됐다.
K9의 단종은 단순한 모델 하나가 사라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아는 K9 생산 라인을 EV2 등 신형 전기차와 목적기반차량(PBV) 생산 기지로 전환해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 더욱 집중할 방침이다. 한 시대의 상징이었던 대형 세단의 퇴장은, 기아가 전동화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상징적인 변화인 셈이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