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여 편 작품 남긴 ‘한국 영화계의 전설’, 故 김지미 배우에게 금관문화훈장 추서
윤여정·이정재 이어 받은 최고 영예...유족이 전한 고인의 마지막 한마디는

김지미 스틸 사진
김지미 스틸 사진




정부가 지난 7일 미국에서 별세한 故 김지미 배우에게 대한민국 문화예술 분야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4일 오후 서울 충무로 서울영화센터에 마련된 고인의 추모 공간을 직접 찾아 유족 대표에게 훈장을 전달했다. 현지에서 장례 절차를 진행 중인 고인의 딸 최영숙 씨는 참석하지 못했으나, 한국영화인협회를 통해 고인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였다고 전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문체부는 “고인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한 시대의 영화 문화를 상징하는 배우였다”며 “한국 영화 제작 기반 확충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한국 영화 생태계 보호와 제도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추서 이유를 밝혔다.

700여 편의 필모그래피 한국 영화의 역사



故 김지미는 1957년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래 700여 편이라는 경이로운 수의 작품을 남긴 한국 영화계의 산증인이자 대표 스타 배우다. ‘토지’(1974), ‘길소뜸’(1985) 등 수많은 걸작에서 주연을 맡으며 한국 영화의 성장기를 이끌었다.

특히 그는 멜로부터 사회성 짙은 드라마, 문예 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여성 중심의 서사가 드물었던 시절에도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역할을 소화하며 스크린 속 여성 인물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 주요 시상식에서 수차례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이력은 그의 연기력과 대중적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한다.

배우를 넘어 제작자이자 활동가로



고인의 활동은 스크린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980년대에는 ㈜지미필름을 직접 설립해 제작자로 나서며 한국 영화 제작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보탰다. 배우가 직접 작품 선택과 제작 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선진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한국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역임하며 영화인들의 권익을 대변했고, 특히 스크린쿼터사수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국 영화의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지켜내는 데 앞장섰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정책 논의에도 참여하는 등 한국 영화 생태계 전반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양윤호 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은 “김지미 배우는 우리 영화계 후배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감한 잔다르크였다”며 “한류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 한국 영화 산업의 토대를 만들어낸 선배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제작자, 아티스트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한편, 故 김지미 배우는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별세한 故 이순재 배우에게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으며, 배우로는 2021년 윤여정, 2022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