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4천억 빚더미에 스러진 ‘이건희의 꿈’, 단순한 IMF 위기 탓 아니었다

SM5는 닛산, 야무진도 닛산... 독자 기술 없이 버티기엔 너무 가혹했던 시장

이건희 회장 / 르노삼성


‘르노삼성’이라는 이름이 2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배경에는 삼성의 첫 완성차 사업 실패가 자리 잡고 있다. 1998년 SM5를 내놓으며 시장에 야심 차게 뛰어들었지만, 불과 2년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단순히 외환위기 탓으로만 돌리기 힘든 복합적인 원인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삼성자동차의 실패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는다. 이미 경쟁이 치열했던 시장에 뛰어든 ‘후발 진입’의 한계, 시장 예측을 빗나간 ‘과잉 투자’, 그리고 핵심 기술을 외부에서 들여온 ‘기술 의존’ 구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위험 요소가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변수와 만나면서 삼성의 자동차 꿈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SM5는 좋았는데 회사는 왜 흔들렸나



SM7 / 르노삼성


출시 당시 SM5의 품질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차 한 대의 완성도와 기업의 생존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였다. 삼성은 다섯 번째 후발 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산 신호공단에 대규모 설비를 투자하고 2010년까지 연 150만 대 생산이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SM5가 출시된 1998년은 IMF 구제금융으로 소비 심리가 얼어붙은 시기였다. 판매량이 계획에 미치지 못하자 막대한 설비 투자는 고스란히 고정비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국 사업 시작 2년도 안 돼 누적 부채는 2조 4,000억 원대까지 불어났다. 시장에 늦게 진입한 만큼 빠르게 규모를 키우려 했던 ‘과잉 투자’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된 셈이다.

핵심 기술이 발목 잡은 결정적 이유



기술 기반의 취약성도 문제였다. SM5는 닛산의 ‘세피로’를, 상용차였던 1톤 트럭 ‘야무진’은 닛산 ‘아틀라스’를 기반으로 만들었다. 이는 단기간에 제품을 출시하는 데 유리했지만, 장기적인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라이선스 방식은 자체 플랫폼이나 엔진 같은 독자 기술을 축적할 시간을 벌지 못하게 했다. 당시 현대와 기아가 독자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닛산 기반이라는 점이 초기 품질에 대한 신뢰를 줬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으로서는 기술 자립과 원가 경쟁력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위기를 맞은 셈이다. 시장에 안착하기도 전에 터진 위기 앞에서 ‘기술 의존’ 구조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SM7 실내 / 르노삼성


삼성이 자동차를 포기하고 배터리를 택한 배경



기아자동차 인수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그룹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2조 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자동차 사업을 계속하기보다, 반도체와 전자라는 핵심 주력 산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결국 삼성자동차는 법정관리를 거쳐 프랑스 르노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하며 SM 브랜드와 부산 공장은 명맥을 이었다. 하지만 삼성상용차는 인수 대상에서 제외돼 파산 절차를 밟으며 야무진 브랜드와 함께 사라졌다.

삼성은 완성차 제조에서 손을 뗐지만 자동차 산업을 완전히 떠나진 않았다.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전기차 배터리(삼성SDI), 차량용 반도체, 전장 부품 사업에 집중하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핵심 공급자로 역할을 바꾼 것이다.
자동차를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전동화 시대에 가장 중요한 부품을 공급하며 산업 내 영향력을 유지하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택했다.

XM3 / 르노삼성


SM5 실내 / 르노삼성


SM5 / 르노삼성


QM6 / 르노삼성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