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불평등의 민낯. 우리 시대의 생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

닫힌 ‘기차’와 수직 ‘감옥’, 거대 자본에 맞선 소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이들의 처절한 사투

“공정한 출발선은 없다.” 많은 2040 세대가 공감하는 이 말은 더 이상 냉소적인 푸념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솟은 자산 가격과 견고해진 계급의 벽은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키워드로 만들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과 분노는 스크린 속 이야기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특히 넷플릭스는 극단적인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비중 있게 다룬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현시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 영화들은 보는 이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불평등한 세상 속 약자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룬 넷플릭스 영화 네 편을 꼽아봤다.

수직 감옥 ‘플랫폼’, 이기심으로 쌓은 절망의 탑

더 플랫폼 / 넷플릭스
스페인 영화 ‘더 플랫폼’(2019)은 불평등을 가장 직관적이고 충격적인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배경은 수직으로 끝없이 이어진 감옥 ‘플랫폼’. 하루에 한 번, 최상층부터 온갖 진수성찬이 담긴 테이블이 내려온다. 위층은 원하는 만큼 먹고, 아래층으로 갈수록 남는 것은 빈 그릇과 뼈다귀뿐이다.

상층은 과식하고 하층은 굶주리거나 서로를 공격한다. 한 달마다 층이 무작위로 바뀌면서, 어제의 약자가 오늘의 강자가 되기도,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이 끔찍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음식을 배분하려 시도하지만, 극한의 이기심과 마주한다. ‘자발적 연대’가 실종된 극단적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지 생생하게 고발한다.

꼬리 칸의 반란, 멈추지 않는 ‘설국열차’

설국열차 /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는 계급 투쟁을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 완벽하게 압축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지구, 유일한 생존처인 열차 안은 철저히 계급화되어 있다. 앞 칸은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지배층이, 꼬리 칸은 억압받으며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는 피지배층이 차지했다.

꼬리 칸의 ‘약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앞 칸을 향한 혁명을 시작한다. 문을 하나씩 통과할수록 드러나는 앞 칸의 모습은 꼬리 칸의 현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는 단지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 세계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약자’들이 시스템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벌이는 처절한 투쟁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거대 자본에 맞선 소녀, ‘옥자’의 외로운 질주

옥자 / 넷플릭스
봉준호 감독의 또 다른 작품 ‘옥자’(2017)는 불평등의 주체를 국가나 독재자가 아닌 ‘거대 다국적 기업’으로 설정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폭력적으로 짓밟는지 보여준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는 유일한 친구인 슈퍼 돼지 ‘옥자’를 글로벌 기업 ‘미란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친환경’, ‘지속 가능성’ 같은 세련된 언어 뒤에 동물을 공장식으로 사육하고 착취하는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숨기고 있다. ‘미자’라는 가장 연약한 개인은 이 거대한 ‘골리앗’에 맞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스템에 맞선 개인의 순수한 저항이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지 여실히 드러난다.

“선을 넘는다는 것”, 전원 백수 가족의 ‘기생충’

기생충 / 넷플릭스
이 주제에서 ‘기생충’(2019)을 빼놓을 수 없다. 앞선 영화들이 SF나 판타지적 설정을 차용했다면, ‘기생충’은 지독하게 현실적인 공간에서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기택’네 가족과 언덕 위 호화 저택에 사는 ‘박사장’네. 이 두 가족은 냄새로 구분될 만큼 극단적인 빈부 격차를 상징한다.

기택네 가족은 생존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며, 결국 ‘약자’와 또 다른 ‘약자’가 생존을 두고 부딪히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으려 했던 이들의 처절한 욕망은, 불평등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베어낸다.

소개된 네 편의 영화는 모두 극단적인 불평등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들이 불편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은 아마도 영화 속 이야기가 지금 우리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