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플래그십 SUV 투아렉 2026년 생산 종료… 수익성 앞세운 ‘선택과 집중’ 본격화

포르쉐 카이엔, 람보르기니 우루스와 뼈대를 공유했던 ‘가성비 명품 SUV’ 폭스바겐 투아렉이 23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단종 수순에 들어간다. 주요 외신들은 폭스바겐이 2026년부터 투아렉 생산을 중단하고 후속 모델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단순한 모델 단종을 넘어, 수익성이 낮은 모델은 과감히 정리하고 ‘돈 되는’ 볼륨 모델에 집중하겠다는 폭스바겐의 냉철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폭스바겐 투아렉 측정면 (출처=폭스바겐)<br>
폭스바겐 투아렉 측정면 (출처=폭스바겐)


‘엔지니어의 자존심’이 낳은 비운의 명작

투아렉의 단종 소식이 더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차가 가진 독보적인 혈통 때문이다. 투아렉은 2002년, 폭스바겐 그룹의 기술력을 과시하고 브랜드를 고급화하려던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회장의 야심 찬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폭스바겐 투아렉 측정면 (출처=폭스바겐)<br>
폭스바겐 투아렉 측정면 (출처=폭스바겐)


그 결과, 당대 최고의 플랫폼이었던 MLB 에보(Evo)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플랫폼은 포르쉐 카이엔과 아우디 Q7은 물론, 벤틀리 벤테이가와 람보르기니 우루스 같은 초호화 SUV들이 사용하는 뼈대다. 덕분에 투아렉은 대중 브랜드의 로고를 달고 있었음에도, 강력한 주행 성능과 에어 서스펜션이 만들어내는 고급스러운 승차감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명차로 인정받았다.

‘대중 브랜드’의 한계, 결국 ‘팀킬’의 희생양 되다

하지만 이 뛰어난 기술력은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폭스바겐 로고가 박힌 차에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하기를 주저했다. 또한, 조금만 더 보태면 아우디 Q7이나 포르쉐 카이엔을 살 수 있다는 점은 그룹 내에서의 ‘팀킬’을 유발하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폭스바겐 투아렉 실내 (출처=폭스바겐)<br>
폭스바겐 투아렉 실내 (출처=폭스바겐)
결국 폭스바겐은 투아렉 같은 저수익 플래그십 모델 대신, 글로벌 베스트셀러인 티구안과 같은 고수익 볼륨 모델에 집중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투아렉의 빈자리, ‘실속’으로 채운다

투아렉이 떠난 폭스바겐의 플래그십 SUV 자리는 북미 시장에서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아틀라스’가 대체할 전망이다. 아틀라스는 투아렉과 달리 대중적인 MQB 플랫폼을 기반으로, 3열 시트를 갖춘 실용성과 절반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다. 이는 폭스바겐이 ‘프리미엄 지향’에서 ‘철저한 실속주의’로 방향을 틀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폭스바겐 투아렉 측후면 (출처=폭스바겐)<br>
폭스바겐 투아렉 측후면 (출처=폭스바겐)
기술적으로는 찬사받았지만 상업적으로는 외면받았던 비운의 플래그십, 투아렉의 퇴장은 폭스바겐의 냉정한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제 도로 위를 달리는 투아렉은 진정한 ‘아는 사람만 아는 명차’로 남게 될 것이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