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불법 썬팅부터 ‘하차감’, ‘제로백’ 집착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자동차의 본질적 가치를 어떻게 흐리는지 살펴본다.

안전보다 과시, 실용성보다 이미지를 우선하는 일부 운전자들의 심리와 그 위험성을 진단한다.

EV5 실내 / 기아
EV5 실내 / 기아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은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남아있다. 특히 일부 운전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소비문화는 해외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이는 바로 ‘짙은 선팅’, ‘하차감’, 그리고 ‘제로백’에 대한 집착으로 요약된다. 이동 수단이라는 본질보다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우선하는 이 문화가 과연 우리의 도로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있을까.

프라이버시라는 명분 뒤의 위험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내부를 들여다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외관을 이유로 짙은 선팅 필름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멋의 문제가 아닌, 안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현행법상 앞면 유리는 가시광선 투과율 70%, 운전석 좌우 창문은 4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운전자의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안전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실제 도로에서는 투과율 30%는 물론 10%대 필름을 시공한 차량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야간이나 우천 시 운전자의 시야를 치명적으로 방해하는 것은 물론, 다른 운전나 보행자가 운전자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어려워 돌발 상황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 교통안전공단 연구에 따르면 짙은 선팅은 운전자의 인지 반응 시간을 최대 0.5초 이상 늦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찰나의 순간이 사고를 결정하는 도로 위에서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수치다.

제로백 예시 / KGM 공식 블로그
제로백 예시 / KGM 공식 블로그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소비, 하차감



‘하차감’이라는 단어는 한국 자동차 문화를 설명하는 독특한 키워드다. 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까지 고려해 차를 구매하는 소비 행태를 일컫는다. 자동차의 성능이나 실용성, 안전성 같은 본질적인 가치보다 특정 브랜드가 주는 사회적 지위나 이미지가 더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기준이 오롯이 타인의 시선에 맞춰질 때, 합리적인 소비는 길을 잃기 쉽다. 실제 차량의 용도나 운전 습관과 무관하게 오직 ‘보여주기’ 위해 무리해서 고급 수입차를 구매하는 현상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문화는 자동차를 이동 수단이 아닌, 계급을 드러내는 상징 자본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도로와 동떨어진 숫자놀음, 제로백



하차감 예시
하차감 예시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 이른바 ‘제로백’ 역시 많은 운전자가 집착하는 수치다. 제로백이 짧을수록 성능이 좋은 차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국내 도심 대부분의 제한 속도가 시속 50km라는 현실을 감안하면, 제로백 성능을 일상 주행에서 체감할 기회는 거의 없다.
물론 빠른 가속력이 주는 운전의 재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숫자가 차량의 모든 가치를 대변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문제다. 자동차의 성능은 가속력 외에도 안정적인 코너링, 제동 능력, 승차감 등 복합적인 요소로 평가되어야 한다. 제로백 경쟁에만 매몰되다 보면 정작 운전자와 동승자의 안전과 편안함을 책임지는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게 된다.

이미지보다 안전이라는 기본으로



불법 선팅, 하차감, 제로백 집착은 결국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자동차를 안전한 이동 수단으로 보기보다, 타인에게 자신을 과시하고 경쟁하는 도구로 인식하는 문화다. 하지만 화려한 이미지나 자극적인 숫자가 결코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자동차 문화의 성숙은 더 짙은 필름이나 더 빠른 숫자를 좇는 데서 오지 않는다. 나와 타인의 안전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세우고, 자동차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이제는 겉으로 보이는 멋이 아닌, 안전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기사 이해를 위한 이미지 / 헤이딜러
기사 이해를 위한 이미지 / 헤이딜러


불법썬팅 / 온라인 커뮤니티
불법썬팅 / 온라인 커뮤니티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