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만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살인의 추억’부터 ‘테드 번디’까지, 끔찍하고도 생생한 ‘원본’ 이야기.
수많은 공포 영화가 존재하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라는 문구만큼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실화의 공포는 그것이 실제로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넷플릭스에서 실제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들을 스크린으로 옮겨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희대의 연쇄살인범들과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다룬,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절망이 빚어낸 괴물… 샤를리즈 테론의 ‘몬스터’ (2003)
샤를리즈 테론은 이 역을 위해 14kg을 증량하고 특수 분장까지 감행하며 실제 인물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여줬다. 외모뿐만 아니라 말투, 걸음걸이, 절망에 찬 눈빛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영화는 에일린을 단순한 악마로 그리지 않는다. 끔찍한 유년기의 학대와 사회의 냉대 속에서 매춘부로 살아가던 그녀가 어떻게 스스로 ‘몬스터’가 되어갔는지, 그 처절한 과정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탐구다.
“그럴 사람 아니에요”… 가장 다정한 얼굴로 속인 악마,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2019)
영화는 잔혹한 살인 장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신, 전적으로 연인 ‘리즈’(릴리 콜린스)의 시점을 따라간다. 다정하고 완벽한 연인이었던 ‘테드’(잭 에프론)가 연쇄살인 용의자로 체포되었을 때, 리즈는 물론 관객조차 “저렇게 매력적인 사람이 설마 범인일까?”라는 혼란을 함께 겪는다. 하이틴 스타 이미지가 강했던 잭 에프론의 캐스팅은, 대중을 현혹했던 테드 번디의 카리스마와 그 뒤에 숨겨진 소름 끼치는 이면을 표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악마가 가장 평범하고 매력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을 섬뜩하게 보여준다.
“밥은 먹고 다니냐?”… 시대의 무능이 낳은 비극, ‘살인의 추억’ (2003)
영화는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의 무능하고 폭력적인 공권력, 낙후된 수사 시스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다. 육감에 의존하는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이성적 수사를 시도하는 ‘서태윤’(김상경)의 대립과 좌절은, 범인을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잡지 못하게 만드는’ 시대적 한계를 고발한다.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후, 형사를 그만둔 박두만이 다시 사건 현장을 찾아 카메라(관객)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개봉 당시 잡히지 않았던 범인을 향한 분노와 질문 그 자체였다. (영화 개봉 16년 후인 2019년, 진범 이춘재가 특정되었다.)
“일단 무조건 믿고”… 아무도 몰랐던 범죄를 캔 집념, ‘암수살인’ (2018)
이 영화는 범인을 쫓는 숨 가쁜 추격전 대신, 교도소 접견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뇌 싸움에 집중한다. 형사에게 돈과 영치품을 요구하며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 단서를 흘리는 살인범, 그리고 그의 말을 토대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잊힌 피해자들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형사의 모습이 밀도 있게 그려진다. 특히 살인범의 광기와 능글맞음을 오간 주지훈의 연기는 관객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자극적인 묘사 대신, 잊힌 억울함을 파헤치려는 한 형사의 집념과 직업윤리를 묵직하게 조명한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