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성은 최고지만 ‘보여주기’ 문화에 밀려난 해치백과 왜건
SUV가 모든 장점을 흡수하며 설 자리를 잃어버린 비운의 차종들
제네시스 해치백
SUV가 무너뜨린 기능적 구분
본래 자동차의 바디타입은 명확한 용도에 따라 구분되었다. 세단은 비즈니스와 격식을, SUV는 레저와 오프로드를, 그리고 해치백과 왜건은 도심 주행과 실용성을 담당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이러한 기능적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도심형 SUV가 등장하면서 해치백의 컴팩트함과 왜건의 넓은 적재 공간이라는 장점을 대부분 가져갔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굳이 해치백이나 왜건을 선택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기능적으로 SUV가 완벽한 대체재가 된 것이다.
볼보 V60
해치백은 소형차, 왜건은 못생긴 차?
한국에서 해치백은 오랫동안 ‘첫 차’ 또는 ‘사회초년생의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경차 및 소형차 위주로 라인업이 구성되다 보니,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어딘가 부족한 선택지로 여겨졌다. 이는 자연스럽게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왜건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짐차’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세단과 비슷한 차체 높이를 유지하며 트렁크 공간을 넓히기 위해 길어진 뒷모습(리어 오버행)이 국내 소비자들의 미적 기준에는 어색하게 비쳤다. 결국 ‘애매하고 못생긴 차’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보여주기 문화와 소극적인 제조사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소비재다. 이런 문화 속에서 굳이 디자인이나 용도를 설명해야 하는 해치백과 왜건은 대중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웠다. “이 차 왜 샀어?”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차는 매력적이지 않다.제조사 역시 판매량이 저조한 한국 시장에서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트림은 최소화되고 마케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전시장에서도 실물을 보기 어려운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는 소비자에게 “제조사도 신경 쓰지 않는 모델이니, 중고차 값도 많이 떨어질 것”이라는 불안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골프 / 폭스바겐
앞으로도 설 자리는 없을까
결론적으로 해치백과 왜건은 상품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 특유의 소비문화와 시장 구조 속에서 외면받았다고 볼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경제적인 이유로 경차가 잠시 주류였던 때를 제외하면, 이들이 시장의 중심에 선 역사는 없다. 최근에는 경차 시장마저도 캐스퍼(SUV)나 레이(박스카)에 주도권을 내준 상황이다.물론 이 차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폭스바겐 골프나 미니 쿠퍼처럼 확고한 개성을 중시하는 소비자, 볼보 크로스컨트리처럼 유럽 감성과 뚜렷한 사용 목적을 이해하는 소비자층은 꾸준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기를 회복하기는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한국 시장에서 해치백과 왜건은 합리적이지만 비주류인 선택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