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이 부르는 휴가 번아웃, ‘뇌 휴식 스위치’ 켜는 법. 심리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5가지

갓벽 휴가 계획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철. 하지만 막상 휴가지에 도착해서도 일과 관련된 걱정에 사로잡히거나, 가족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게 과연 쉬는 게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바쁜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휴가 모드’로 전환하는 것은 시속 160km로 달리던 자동차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것과 같아, 우리 몸과 마음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겪는 ‘휴가 번아웃’ 현상에 대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 수석 심리치료사는 “우리는 휴가가 본래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어버렸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의 휴가가 정신적, 감정적, 신체적 휴식을 의미했다면, 오늘날의 휴가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활동을 욱여넣으려는 시도로 변질되었다”며 “일 모드나 부모 모드에서 휴가 모드로의 급격한 전환은 우리 뇌에 큰 부담을 준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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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소중한 휴가를 진정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제대로 쉬는 기술’을 소개한다.

1. 의도적으로 신체의 속도를 늦춰라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우리 뇌는 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이른바 ‘투쟁-도피(fight or flight)’ 반응 상태에 돌입한다. 이로 인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은 얕아진다. 한 전문가는 “이 상태에서는 진정한 휴식이 불가능하다”며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의도적으로 신체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휴가지에 도착했다면 평소보다 천천히 산책을 즐기거나, 음식의 맛과 향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식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몸의 속도를 물리적으로 늦추면, 뇌는 비로소 지금이 휴식의 시간이라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긴장을 풀기 시작한다. 가능하다면 업무 관련 이메일 확인이나 전화는 특정 시간에만 최소한으로 하고, 스마트폰을 잠시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술과의 거리두기는 몸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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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버려라

“하루에 10가지 이상의 활동을 해야 휴가를 제대로 보낸 것”이라는 강박은 오히려 휴식을 방해하는 가장 큰 적이다. 전문가는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최적화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며 “하루에 단 몇 가지만이라도 온전히 즐기겠다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휴가의 첫 1~2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는 데 집중하는 것이 좋다. 공항처럼 분주한 공간을 거쳐 휴가지에 도착한 직후에는 바로 긴장을 풀기 어렵다. ‘지금 당장 쉬어야 해!’라는 압박감 자체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신경계가 안정을 찾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적응 시간을 주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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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만의 ‘휴가 가치’를 정하고 경계를 설정하라

이번 휴가를 통해 진정으로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한 정신건강 플랫폼의 치료사는 “휴가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가족과의 오롯한 시간인지, 소셜 미디어로부터의 해방인지, 아니면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인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휴가 가치’가 정해졌다면, 이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족과의 시간에 집중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저녁 식사 시간에는 모든 가족이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규칙을 정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지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은, 모두에게 필요한 양질의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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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면 빚을 갚고, 알코올은 멀리하라

대부분의 현대인은 일상에서 막대한 ‘수면 빚’을 지고 살아간다. 휴가는 이 빚을 갚을 절호의 기회다. 한 전문가는 “많은 사람이 만성 피로에 시달린다는 사실은, 휴가가 수면 부족을 줄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가능하다면 아침에 늦잠을 자는 여유를 누리는 것이 좋다. 다만, 휴가지에서의 즐거움을 위해 마시는 술은 적당히 조절해야 한다. 알코올은 수면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쉬고 재충전하고 싶다면, 과도한 음주는 오히려 휴가에서 돌아온 당신을 더욱 피곤하게 만들 뿐이다.
여유로운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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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라

늘 하던 일과 비슷한 활동 대신,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뇌를 ‘자동항법장치’ 모드에서 벗어나게 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현지 언어 몇 마디를 배워보거나, 새로운 수상 스포츠에 도전하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탐험하는 것 모두 좋다.

이러한 창의적인 활동은 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어 진정한 휴식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의외의 성과까지 안겨줄 수 있다. 진정한 휴식은 멈춤을 넘어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