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전 피난민의 애환 서린 그곳, 지금은 부산항 파노라마 명소로

경사형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면 펼쳐지는 이바구길의 숨은 이야기들

지금은 철거된 모노레일 / 사진=부산 갈맷길
지금은 철거된 모노레일 / 사진=부산 갈맷길


부산역 뒤편,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168계단은 한때 피난민의 애환이 서린 고된 길이었다. 7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곳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낭만이 공존하는 독특한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산복도로의 고유한 풍경과 탁 트인 부산항 전망, 그리고 최근 설치된 엘리베이터가 있다. 낡고 가파르기만 하던 계단길이 어떻게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됐는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40도 경사 오르던 피난길, 이제는 엘리베이터가 대신한다

168계단 우물 / 사진=한국관광콘텐츠랩
168계단 우물 / 사진=한국관광콘텐츠랩




과거 모노레일이 있던 자리에 지난 3월 11일, 12인승 경사형 엘리베이터 ‘초량168계단 하늘길’이 문을 열었다. 40도에 달하는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이 시설 덕분에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주민과 관광객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가파른 계단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이들도 이제는 편하게 산복도로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본래 이곳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고지대 산동네에 터를 잡으며 만들어진 길이다. 부산항에서 산동네 집까지 생필품을 나르던 유일한 통로였기에, 계단 하나하나에 고단했던 삶의 흔적이 배어있다. 엘리베이터 개통은 단순한 편의시설 확충을 넘어, 75년 전의 역사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엘리베이터는 하단 문화전시공간, 중간 김민부 전망대, 상단 명란브랜드연구소를 잇는 세 정류장을 운행한다. 덕분에 보행 약자도 각기 다른 높이에서 부산항의 다채로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게 됐다.

168계단 모습 / 사진=한국관광콘텐츠랩
168계단 모습 / 사진=한국관광콘텐츠랩

부산항 풍경에 이야기가 더해지는 공간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다 중간 정류장에 내리면 ‘김민부 전망대’를 만난다. 동구 출신 시인의 발자취를 기리는 이곳에서는 부산항과 부산항대교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숨을 고르기 좋은 장소다.

상단 정류장에는 복합 문화공간 ‘168 더 데크’와 ‘명란브랜드연구소’가 방문객을 맞는다. 야외 스크린과 무선 헤드셋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이색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음식과 아기자기한 기념품도 구매할 수 있다. 특히 ‘명란브랜드연구소’는 부산의 명물인 명란을 주제로 한 독특한 공간으로, 명란 파스타나 바게트 같은 메뉴를 맛볼 수 있어 식도락 여행객에게도 인기다.

홍살문 따라 피어나는 배롱나무 / 사진=논산시 문화관광
홍살문 따라 피어나는 배롱나무 / 사진=논산시 문화관광




계단길을 따라 조성된 이바구 골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초량 주민들의 옛 생활 자료가 전시된 ‘이바구공작소’와 담장 갤러리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한다. 골목 끝자락 ‘유치환의 우체통 전망대’에서 1년 뒤 도착하는 느린 우편을 보내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된다.

초량 168계단과 이바구길 전 구간은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된다.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7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다만 지형 특성상 경사가 급한 곳이 많으니 편안한 신발 착용은 필수다.

168계단 / 사진=부산 갈맷길
168계단 / 사진=부산 갈맷길
168계단 전망대 / 사진=부산 갈맷길
168계단 전망대 / 사진=부산 갈맷길
168계단 풍경 / 사진=부산 갈맷길
168계단 풍경 / 사진=부산 갈맷길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