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8월 플래그십 세단 G90에 파격 재고 할인… “왕의 품격, E클래스 가격으로”
플래그십 세단의 세계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결코 가격으로 말하지 말 것’. 브랜드의 정점에서 가치를 지키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8월, 제네시스가 그 금기를 깨뜨렸다. 브랜드의 얼굴인 G90에 최대 1,300만 원이라는, ‘할인’을 넘어 ‘투매’에 가까운 가격표를 붙여 시장에 내던진 것이다. 이 한 방에, 9천만 원짜리 E클래스 계약서에 막 도장을 찍은 고객들은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았다.
제네시스 G90 실내 (출처=제네시스)
‘왕’의 자존심을 던지다, 1,300만 원의 의미
이번 할인은 단순한 판촉이 아니다. 브랜드의 최상위 모델, G90의 가격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신호다. 제네시스는 4월 이전에 생산된 재고라는 ‘주홍글씨’를 단 G90에 400만 원의 낙인을 찍고, 여기에 트레이드인, 재구매 등 각종 조건을 더해 최대 1,300만 원의 가격을 깎아내렸다.
제네시스 G90 측정면 (출처=제네시스)
그 결과, 9,500만 원대에서 시작하던 G90의 실구매가는 8,000만 원대 초반까지 추락했다. 국산차의 자존심이자 최고급 세단이 스스로 몸값을 낮춰, 한 체급 아래의 경쟁자들과 진흙탕 싸움을 시작한 셈이다.

제네시스 G90 실내 디스플레이 (출처=제네시스)
E클래스 대기자의 ‘멘붕’, GV80 계약자의 ‘한숨’
이 소식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수입차 구매 대기자들이다. 어젯밤까지 9천만 원대 E클래스 출고를 기다리며 설레던 A씨는, 오늘 아침 G90이 8,200만 원대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패닉에 빠졌다. 한 체급 위, V6 터보 엔진을 얹은 국산 최고급 세단이 내 차보다 싸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제네시스 현행 G90 (출처=제네시스)
상황은 GV80 계약자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가격이면 당연히 브랜드의 정점인 G90 세단으로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제네시스의 이번 결정은 결과적으로 자사의 다른 모델과 수입 경쟁 모델의 잠재 고객까지 모두 흡수하려는, 무자비한 시장 청소기 역할을 하고 있다.

제네시스 G90 측후면 (출처=제네시스)
이 파격, 독인가 약인가?
제네시스는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표면적으로는 재고 소진과 판매량 증대라는 달콤한 ‘약’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브랜드 가치 하락이라는 쓰디쓴 ‘독’이 숨어있다. 오늘의 파격 할인이 내일 G90의 중고차 값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제네시스 G90 측면 (출처=제네시스)
이석호 기자 shl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