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후 헐값 매각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바이백 조항 행사 가능성은 ‘희박’
현대차 떠난 자리 꿰찬 중국차... 러시아 시장 판도 완전히 뒤집혔다

솔라리스 차량 - 출처 : 솔라리스
솔라리스 차량 - 출처 : 솔라리스


현대자동차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가동을 멈췄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단돈 1만 루블(약 14만 원)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며 충격을 줬다. 당시 계약에는 2년 내에 공장을 되살 수 있는 ‘바이백(buyback)’ 조항이 포함돼 한 줄기 희망을 남겨뒀지만, 이마저도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분위기다.

내년 1월이면 바이백 조항의 유효 기한이 끝나지만, 현대차가 이를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섣불리 사업을 재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되찾기 어려운 14만원짜리 공장



솔라리스 차량 - 출처 : 솔라리스
솔라리스 차량 - 출처 : 솔라리스


최근 로이터통신은 현대차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재로서는 지분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보도하며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현대차 역시 공식적으로는 바이백 조항 행사 여부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러시아 시장 재진입에 대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단순한 사업 보류를 넘어, 사실상 러시아 사업을 정리하는 수순으로 해석된다. 현대차는 이미 러시아 사업 철수와 관련해 약 288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재무제표에 반영한 상태다. 헐값 매각으로 인한 직접적인 손실보다, 과거 러시아 시장의 핵심 생산 기지를 포기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훨씬 큰 셈이다.

현대차 이름 지우고 달리는 솔라리스

러시아 공장 - 출처 : 현대자동차
러시아 공장 - 출처 : 현대자동차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러시아 기업 ‘AGR 오토모티브’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 공장에서 ‘솔라리스(Solaris)’라는 브랜드로 차량이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델들은 과거 현대차의 주력 차종이었던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 크레타와 기아 K2 크로스 등을 기반으로 이름만 바꾼 리브랜딩 차량들이다.

한때 현대차와 기아는 러시아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 23.3%를 기록하며 연간 35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핵심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현대차의 기술력으로 세운 생산 설비와 브랜드 영향력 모두 현지 기업에 넘어간 상태다. 현대차가 떠난 공장에서 현대차의 유산으로 만든 차가 팔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국차 천하가 된 러시아

솔라리스 - 출처 : 현대자동차
솔라리스 - 출처 : 현대자동차


무엇보다 현대차의 러시아 복귀를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완전히 뒤바뀐 시장 판도다. 현대·기아를 비롯한 서방 브랜드들이 철수한 공백을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무서운 속도로 파고들었다. 2024년 기준, 중국 완성차 브랜드는 러시아에서 약 100만 대를 판매하며 전체 시장(157만 대)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시장의 주도권이 완전히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한 자동차 업계 전문가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된다고 해도, 한번 주도권을 내준 시장을 되찾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라며 “과거와 같은 위상을 되찾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결국 현대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언제든 되돌릴 수 있는 자산’이 아닌, 정리된 사업으로 굳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대차의 러시아 재진출 시나리오는 점점 더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조선미 기자 jsm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