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절벽과 황강이 빚어낸 한 폭의 수묵화, 1300년의 역사를 품은 합천 연호사
입장료와 주차비도 없는 숨은 명소, 눈 내린 다음 날 아침이 절정

연호사 함벽루 겨울 / 사진=합천관광
연호사 함벽루 겨울 / 사진=합천관광




경남 합천의 남쪽, 유유히 흐르는 황강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시선을 압도하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깎아지른 절벽에 제 몸을 기댄 채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고찰, 합천 연호사다.

특히 겨울, 소복이 쌓인 흰 눈이 고즈넉한 사찰의 기와지붕과 마당을 하얗게 덮으면 이곳의 진정한 매력이 드러난다. 화려함 대신 자연과 시간이 빚어낸 순백의 설경은 찾는 이들의 마음마저 고요하게 만든다. 1,300년의 역사가 잠든 겨울 왕국으로 떠나본다.

해인사보다 159년 앞선 역사





연호사 함벽루 현판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정대호
연호사 함벽루 현판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정대호


합천 연호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창건된, 합천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이다.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해인사보다 무려 159년이나 앞서 세워졌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긴다. 신라의 와우선사가 삼국시대 격전지였던 대야성 전투에서 스러져간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원찰(願刹)’로, 나라를 지키는 호국 사찰의 역할도 겸했다.

현재 전통 사찰 제94호로 지정된 연호사는 황우산 절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배치가 특징이다.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8호 신중탱화를 품은 극락전과 범종각 등이 자리한다. 이 사찰의 가장 큰 매력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다른 곳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황강으로 향하는 독특한 구조다. 겨울철, 지붕에 쌓인 눈이 녹아 떨어지는 낙수 소리를 들으며 강변을 바라보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운치를 더한다.

절벽 위 강물에 띄운 배 함벽루



연호사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 절벽 위에는 합천 8경 중 제5경으로 꼽히는 함벽루가 위용을 뽐낸다. 고려 충숙왕 8년(1321년)에 세워진 이 목조 누각은 ‘처마 끝 빗물이 바로 강물로 떨어지는 국내 유일의 건축 방식’으로 지어져 건축학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누각에 오르면 마치 거대한 배를 타고 강 위를 유영하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누각 내부에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 등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문인들이 남긴 시판이 걸려 있어 풍부한 역사적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누각 뒤편 암벽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직접 새긴 ‘함벽루(涵碧樓)’ 글씨가 남아 있어, 이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맞은편 정양레포츠공원에서 바라보는 함벽루와 연호사의 전경은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촬영 명소로, 강과 절벽, 사찰이 어우러진 겨울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연호사 함벽루에서 보는 풍경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정대호
연호사 함벽루에서 보는 풍경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정대호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팁



합천 연호사와 함벽루는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무료여서 부담 없이 고즈넉한 겨울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사찰 인근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차 후 극락전까지는 도보로 3분이면 충분하다. 눈이 내린 다음 날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황강과 설경이 어우러지는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니 시간을 맞춰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합천 연호사 설경 / 사진=합천관광
합천 연호사 설경 / 사진=합천관광


합천 연호사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홍성종
합천 연호사 / 사진=합천관광 공식 블로그 홍성종


합천 연호사 함벽루 / 사진=합천관광
합천 연호사 함벽루 / 사진=합천관광


박서우 기자 swoo@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