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68년 만의 첫 적자 위기, 23조 원 손실 전망에 전기차 개발 중단 선언.

대신 하이브리드에 집중, 2027년부터 13종 신차 출시 계획 발표.

아큐라 RSX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아큐라 RSX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따스한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일본 자동차의 자존심 혼다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다. 68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 없던 혼다가 사상 첫 연간 손실 위기에 직면했다. 전동화 시대를 향한 야심찬 도전이 수십조 원대 손실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이번 위기의 핵심에는 막대한 투자금이 투입된 전기차 전략의 전면 수정이 자리 잡고 있다. 막대한 손실 규모, 급작스러운 신차 개발 중단, 그리고 하이브리드로의 유턴까지, 68년 흑자 신화를 이어온 혼다가 어쩌다 이런 위기에 직면하게 됐을까?

68년 흑자 신화의 균열, 23조 원 손실 경고등



혼다0살룬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혼다0살룬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혼다는 최근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실적 전망을 기존 3000억 엔 흑자에서 최대 6900억 엔 적자로 대폭 수정했다. 하루아침에 약 9900억 엔, 우리 돈으로 9조 원이 넘는 돈이 사라진 셈이다. 이는 1957년 도쿄 증시 상장 이후 68년 만에 처음 겪는 적자 위기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계연도를 포함해 향후 누적 손실 규모가 최대 2조 5000억 엔, 약 23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위기감에 휩싸인 혼다 경영진은 CEO를 포함해 일부 급여를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야심차게 준비하던 전기차, 왜 멈춰 섰나



혼다0SUV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혼다0SUV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천문학적인 손실의 직접적인 원인은 야심차게 추진하던 전기차 전략의 급제동이다. 혼다는 북미 시장을 겨냥해 개발하던 ‘혼다 0 SUV’, ‘혼다 0 살룬’, 그리고 고급 브랜드 ‘아큐라 RSX’ 등 순수 전기차 3종의 개발 및 생산 계획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미 투입된 개발 설비와 관련 자산을 손실로 처리하면서 막대한 재무적 부담이 발생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할 때 기존 계획을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전략 수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와 예측 불가능성을 인정한 것이다.

구원투수로 등판한 하이브리드



전기차에 대한 속도 조절에 나선 혼다는 그 대안으로 하이브리드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2027년부터 4년간 차세대 하이브리드 신차 13종을 글로벌 시장에 순차적으로 선보인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하이브리드 차량의 연간 판매량을 220만~230만 대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동시에 기존 10조 엔 규모였던 전동화 투자액도 7조 엔으로 30%가량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잠시 숨을 고르겠다는 전략이다.

혼다만의 고민 아닌,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현실



혼다의 이러한 결정은 비단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내연기관 규제가 일부 완화될 조짐을 보이고, 전기차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 속에서 토요타, 닛산 등 다른 일본 제조사들 역시 비슷한 압박을 느끼며 전동화 전략의 속도를 조절하는 추세다. 물론 혼다는 2040년까지 판매 차량을 모두 전기차와 수소차로 전환하겠다는 장기적인 목표는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당분간은 숨 가쁘게 달려온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내실을 다지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오종학 기자 fivejh@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