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건”의 충격, 범죄 조직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쳤던 이 영화.

“왜 속았냐”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범죄 조직의 치밀함과 피해자의 절박함

“월 1천만 원 고수익 보장”, “간단한 컴퓨터 업무”. 최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한 불법 취업 사기 및 감금 사건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달콤한 말에 속아 현지로 떠난 청년들이 마주한 것은 고수익 아르바이트가 아닌, 감금과 폭행, 그리고 보이스피싱 등 불법 범죄 행위 강요였다. 이 끔찍한 현실은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을 다룬 영화 ‘보이스’ / 네이버영화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을 다룬 영화 ‘보이스’ / 네이버영화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인 영화 ‘보이스’(2021)는 바로 이 지옥 같은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개봉 당시에도 충격적인 현실 고증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영화가, 최근 캄보디아 사건과 맞물려 다시금 시청자들의 ‘정주행’ 리스트에 오르고 있다.

‘보이스피싱’ 본거지를 직접 묘사하다



영화 보이스, 변요한 / 네이버 영화
영화 보이스, 변요한 / 네이버 영화
영화 ‘보이스’는 부산 건설 현장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아내와 동료가 막대한 피해를 입자, 전직 형사 ‘서준’(변요한 분)이 범죄 조직의 본거지로 직접 잠입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그놈 목소리’로만 존재하던 보이스피싱 조직의 A부터 Z까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보이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범죄 영화의 공식을 따르기보다, 실제 보이스피싱 조직의 운영 방식을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해킹 조직, 피해자를 속이는 ‘콜센터’ 상담원, 그리고 현금 수거책과 자금 세탁책까지. 영화는 이들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분업화되어 움직이는지 상세히 보여준다.

특히 감금된 상태에서 보이스피싱 ‘대본’을 읽도록 강요받는 조직원들의 모습은 현재 캄보디아 감금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과 겹쳐지며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영화 속 배경은 중국이지만, 그 무대가 현재의 동남아시아로 바뀌었을 뿐 수법과 구조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곽프로’ 김무열의 광기, “네 잘못이 아니야”

영화 보이스, 곽프로 김무열 / 네이버 영화
영화 보이스, 곽프로 김무열 / 네이버 영화
영화의 긴장감을 이끄는 또 다른 축은 조직의 기획자 ‘곽프로’(김무열 분)다. 그는 피해자들의 절박함을 파고들어 돈을 빼앗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감정 없는 인물이다.

돈 앞에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모습은 이 범죄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영화는 “왜 그런 걸 속아?”라며 피해자를 탓하는 사회적 시선에도 일침을 가한다.

영화 속 ‘서준’ 역시 처음에는 아내가 당한 피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조직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이것이 ‘속는’ 문제가 아니라 ‘당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설계임을 깨닫는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극 중 대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고 있을 실제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물론 ‘보이스’는 상업 영화로서의 쾌감도 잊지 않는다. 본거지에 잠입한 ‘서준’이 펼치는 필사적인 추격전과 액션은 119분의 러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영화 보이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영화 보이스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이제 보이스피싱은 단순히 ‘운 나쁘게 당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보이스’ 시청은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필수 예방 주사’가 될 수 있다.

한편, 이처럼 현실의 범죄를 고발하는 작품들은 많이 제작되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직접 총책을 잡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민덕희’, 불법 온라인 도박 시장을 다룬 ‘범죄도시4’, 그리고 해외 취업 사기와 온라인 도박의 실상을 그린 중국 영화 ‘고주일척(No More Bets)’ 등도 ‘보이스’와 함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