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은 분할 대상 아냐”…대법,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뒤집었다
최태원 이혼소송 새 국면, 1조 재산분할 무효 가능성 커져

사진=SBS 뉴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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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소송을 파기환송했다.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넘어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대법 “불법 비자금은 분할 대상 아냐”…1조3800억 판결 뒤집혀

16일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에서,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과 재산분할금 1조3808억1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의 법적 성격이었다. 대법원은 “비자금은 뇌물로 조성된 불법자금으로, 이를 통해 형성된 재산은 법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불법의 원인으로 발생한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민법 제746조 ‘불법원인급여 금지’ 조항에 따른 것으로, 불법 자금에서 비롯된 이익은 누구에게도 귀속될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에게 제공한 300억 원은 대통령 재임 중 받은 뇌물로, 이를 통해 형성된 SK㈜ 지분은 합법적 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노 관장이 ‘비자금으로 형성된 SK 자산’의 일부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청구한 항소심의 판단은 법리에 맞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사진=SBS 뉴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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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경영권 변수 해소…“재산분할금 대폭 조정될 듯”

이번 대법원 판결로 최 회장은 당장 1조3808억 원을 지급해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났다. 앞서 2심은 부부 공동재산을 약 4조 원으로 산정하고, 노 관장의 기여도를 35%로 인정해 국내 이혼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금을 선고했다.

그러나 1심은 최 회장이 상속받은 SK㈜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고 665억 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비자금 유입이 불법성을 띠는 만큼, 그 자금으로 형성된 재산은 분할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항소심의 결정을 뒤집었다.

이번 판결로 SK그룹의 경영권 변동에 대한 우려도 해소됐다. 만약 항소심이 확정됐다면 최 회장은 SK㈜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했고, 이는 그룹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었다. 재계는 “대법원이 법리적으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사진=SBS 뉴스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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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비자금’ 쟁점 다시…파기환송심서 기여도 재산정

이번 대법원 판단은 단순한 이혼 판결을 넘어, 과거 6공화국 시절 ‘정경유착’ 의혹의 불법성을 다시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이 SK그룹 성장의 시발점이 됐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근거가 불충분하며 비자금은 불법행위로 조성된 만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는 노 관장의 기여도를 새롭게 산정하고, 재산분할 금액을 대폭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불법원인급여의 원칙을 명확히 적용한 만큼, 파기환송심에서 1조 원대 재산분할금은 상당히 감액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2017년 7월 최태원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만이자, 2023년 항소심 선고 이후 1년 5개월 만에 내려진 판단이다.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이 사건은 다시 고등법원으로 넘어가며 새로운 법적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김은정 기자 kej@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