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코 꿰매고 눈썹 바꾸며 961일간 23곳 전전
사진 공개되자 “미남” 팬클럽까지, 일본 흥분…자서전 베스트셀러
사진 = SNS 갈무리
정체불명의 도주극…“살해 동기는 여전히 미궁”
이치하시는 2007년 3월 25일, 일본 지바현 이치카와시에 거주하던 호커를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한 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다음 날,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호커의 방에서 남겨진 메모지에 그려진 캐리커처와 남자의 이름, 전화번호를 단서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치하시가 경찰이 도착하자 맨발로 도주하면서 그의 추적은 장기화되었다.
이치하시의 살해 동기는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의사로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으며,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적 동기나 금전적인 이유가 없었기에, 일본 경찰은 이치하시의 범행 동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장기간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 = SNS 갈무리
이치하시의 체포 전부터 그의 도피극은 일본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의 체포 사진이 공개되자 ‘잘생겼다’는 반응과 함께 팬클럽까지 생겨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 심지어 이치하시가 체포된 이후 두 달 반 만에 자필 수기 ‘체포될 때까지-2년 7개월의 기록’을 출간하며, 이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치하시의 도주 생활을 흥미 위주로 보도했다. ‘얼굴을 바꾼 범인’, ‘경찰을 농락한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일본판 캐스터 어웨이’ 등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고, 일부 방송사들은 그가 숨어 지낸 오키나와의 무인도 ‘오하시마’를 탐방해 도피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무인도는 이후 유명 관광지로 개발되며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 = SNS 갈무리
이치하시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그는 도주 직후 자신의 얼굴이 범행과 연결된 것을 깨닫고, 편의점에서 바느질 세트와 여성용 쌍꺼풀 테이프를 구입한 후 스스로 코를 꿰매고 눈을 성형하는 기상천외한 시도를 했다. 이후에는 입술이 두껍다는 이유로 가위로 아랫입술을 자르기까지 했다. 이로 인해 그의 얼굴은 수많은 흉터로 변해갔다.
961일간 이어진 그의 도주 생활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도주 중간중간, 그는 병원에서 추가적인 성형 수술을 받으며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 했다. 성형외과에서는 그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고 수술 전후 사진을 촬영해 경찰에 제보했다. 결국 이 사진들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그의 체포로 이어졌다.
사진 = SNS 갈무리
2009년 11월 10일, 이치하시는 또다시 도피를 시도하기 위해 오키나와로 향하는 선박을 타려 했다. 그러나 선박회사 직원이 그를 알아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곧바로 출동한 경찰이 그를 체포했다. 체포된 이치하시는 경찰 조사에서 961일 동안 무려 23곳을 전전하며 도망 다녔다고 진술했다.
일본 경찰은 체포 직후 그가 성형을 시도했던 병원의 정보를 바탕으로 ‘페이스오프 수배 전단’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고, 현상금까지 1000만 엔(약 1억 2600만 원)으로 올리며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벌였다. 이치하시의 도주극은 결국 그의 성형 수술이 결정적인 단서가 되어 막을 내렸다.
그 이후…사건을 넘어선 사회적 열풍
이치하시의 사건은 단순한 범죄를 넘어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그의 도주 생활을 모티브로 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분노’는 2016년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영화는 당시 일본 박스 오피스에서 16억 1000만 엔의 수익을 기록하며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한편, 이치하시의 체포 후에도 그의 자필 수기는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도피극을 흥미롭게 소비한 일본 사회를 비판하며, 흉악범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사회적 병폐를 드러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서윤 기자 sylee@news-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