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V8 F-페이스 생산 끝으로 100년 내연기관 역사 마침표
경쟁사들 주춤할 때 ‘올인’ 선언… 과감한 베팅의 운명은?

마지막 생산 기념 - 출처 : 재규어
마지막 생산 기념 - 출처 : 재규어




영국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가 100년에 걸친 내연기관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금요일, 영국 솔리헐 공장에서 마지막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완료하며 엔진 시대의 공식적인 종언을 고했다.

재규어의 마지막 내연기관 모델은 5.0리터 슈퍼차저 V8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블랙 컬러의 F-페이스 SVR이다. 이 상징적인 차량은 재규어 다임러 헤리티지 트러스트에 기증되어 브랜드의 유산으로 보존될 예정이다.

재규어는 이번 생산 종료를 별도의 공식 발표 없이 조용히 진행했다.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다. 현재 보유 중인 F-페이스 재고는 2026년까지 판매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 차종 단산 완전한 세대교체



타입 00 - 출처 : 재규어
타입 00 - 출처 : 재규어




이번 결정은 단순히 한 모델의 생산 종료가 아니다. 재규어는 2024년 6월 이후 XE, XF, E-페이스, I-페이스, F-타입까지 사실상 기존의 모든 라인업 생산을 순차적으로 중단해왔다. 이는 내연기관은 물론 초기 전기차 모델까지 모두 정리하고, 완전히 새로운 전기차 세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재규어의 새로운 시작은 2026년 중반으로 예정된 차세대 전기 GT 모델의 주문 개시와 함께 본격화된다. 고객 인도는 2027년부터 시작될 예정으로, 이는 단순한 동력계 변화가 아닌 브랜드의 정체성 자체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

경쟁사는 후퇴하는데 나홀로 직진



타입 00 - 출처 : 재규어
타입 00 - 출처 : 재규어


재규어의 이러한 과감한 행보는 최근 전기차 시장의 흐름과 대조된다. 2021년 전기차 전용 브랜드 전환을 선언한 이후, 재규어는 흔들림 없이 이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전동화 목표를 내세웠던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 주요 경쟁사들이 최근 시장 상황을 이유로 전략을 일부 수정하거나 속도 조절에 나선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최근 유럽연합(EU)마저 2035년 내연기관 판매 금지 방침을 완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재규어는 계획 변경 없이 전동화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2024년 공개된 새로운 로고와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이러한 방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만 이 변화는 공개 직후 디자인과 정체성을 둘러싼 논란을 낳기도 했다.

격변 속 재규어가 마주한 과제



마지막 생산 기념 - 출처 : 재규어
마지막 생산 기념 - 출처 : 재규어


하지만 전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새로운 콘셉트 공개 이후 아드리안 마델 CEO가 사임하고, 글로벌 사이버 공격으로 일부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악재도 겪었다. 여기에 장기간 랜드로버 디자인을 이끌어온 디자이너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까지 이어지며 내부적으로도 진통을 겪고 있다.

판매 실적 역시 전환기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재규어 호주 법인은 지난달 단 14대의 차량을 판매했으며, 올해 누적 판매량은 493대에 그쳤다. 기존 모델의 재고가 소진되면서 발생하는 신차 공백 기간 동안 브랜드의 존재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자동차 업계의 한 전문가는 “재규어의 전동화 전략은 현존하는 브랜드 중 가장 과감하고 위험한 선택”이라며 “내연기관 시대의 상징이었던 브랜드가 다가오는 전기차 시장에서 어떤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부활할 수 있을지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혜지 기자 seog@news-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