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3부작’부터 칸 감독상 ‘헤어질 결심’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세계

“이토록 우아한 파격”…당신이 ‘박찬욱 월드’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

“박찬욱 영화”라는 말은 이제 하나의 장르처럼 여겨진다. 아름답고 정교한 화면 속에 인간의 가장 어둡고 깊은 욕망을 담아내는 그의 작품들은 관객의 뇌리에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고, 잔인하지만 끝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힘. 거장이라 불리는 박찬욱 감독의 대표작들을 넷플릭스에서 정주행하며 그의 세계를 탐구해 보자.

박찬욱 감독 영화, 복수는 나의 것 /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 영화, 복수는 나의 것 / 넷플릭스

시작은 ‘복수’, 그러나 방식은 다르다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복수 3부작’은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다.

그 시작을 알린 ‘복수는 나의 것’(2002)은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어설픈 유괴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은 건조하고 무미건조하게 그려져 오히려 더 큰 충격을 안긴다. 관객에게 친절을 베풀기보다, 인물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복수의 허무함을 질문한다.

반면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친절한 금자씨’(2005)‘는 복수를 하나의 화려하고 잔혹한 미학으로 완성시킨다.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끝에 출소한 금자(이영애)는 자신을 나락으로 빠뜨린 백 선생(최민식)에게 치밀한 복수를 계획한다.

영화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사적 복수가 과연 정당한지, 그리고 복수의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윤리적 딜레마를 던진다. 특히 피해자 유족들과 연대하여 복수를 실행하는 장면은 복수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찬욱 감독 영화, 친절한 금자씨 /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 영화, 친절한 금자씨 / 넷플릭스


욕망과 기만, 완벽하게 설계된 서사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은 ’아가씨‘(2016)에서 절정에 달한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고용된 하녀(김태리)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뉘어 각 인물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관객이 철석같이 믿었던 진실이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은 짜릿한 지적 쾌감을 준다.

박 감독은 단순히 반전을 위한 반전을 설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정교하게 계산된 미장센과 감각적인 색채, 인물들의 미묘한 시선을 통해 속임수 너머의 진짜 욕망과 연대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특히 여성 인물들을 주체적으로 그려내며 기존의 남성 중심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영리하게 비튼다.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 /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 / 넷플릭스

마침내, 사랑이 사건이 되다 <헤어질 결심>

’칸의 남자‘ 박찬욱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헤어질 결심‘(2022)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연 돋보이는 변곡점이다.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박해일)과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그린 이 영화는 수사극의 외피를 쓴 멜로드라마다.

박 감독은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인물들의 의심과 관심, 흔들리는 마음을 오롯이 시선과 호흡, 절제된 대사로 쌓아 올린다. “산에서 벌어진 일이 바다에서 마무리된다”는 구조처럼, 영화는 명확한 해답 대신 짙은 여운과 감정의 파고를 남긴다.

그의 전작들이 뜨거운 불과 같았다면, <헤어질 결심>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차가운 바다와 같다. 폭발적인 감정 대신 내면의 파동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멜로 장르에서도 그가 거장임을 증명했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 / 넷플릭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질문이며,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예술적 경험에 가깝다.

이번 주말, 넷플릭스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따라가며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를 함께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마 당신도 그의 세계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지희 기자 jeehee@news-wa.com